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학공부
Theology of Restoration on the Servant
Table of Contents
Ⅰ.서 론(Prolegomena)
Ⅱ 신 론(doctrine of God)
Ⅲ 인간론(anthropology)
Ⅳ 기독론(christology)
Ⅴ 구원론(soteriology)
Ⅵ. 교회론(ecclesiology)
Ⅶ 종말론(eschatology)
Ⅰ. 서론(Prologue)
오랫동안 회복의 신학을 연구하고 예배회복운동인 Nyskc Movement 활동을 하면서 목회적으로 신학의 원론이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과 교리 즉 평신도 신학이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며 꼭 필요한 학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우선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너무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주어들은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었다
성경을 모르니 당연히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니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예수님을 모르니 성령께서 어떤 분이며 무엇을 하시는 분 인줄을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왜곡해서 알고 있다보니 신앙이 온전히 자라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 성경을 모르는데 "경험주의적 은혜"를 내세우며 신학을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이유는 조직신학의 체계를 세우는데 필요한 "이성적 요소"와 "철학적 사고"를 신앙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속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되기보다는 개인의 주관에 의해 수시로 변하는 "치우친 신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치우친 신앙"의 가능성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말씀의 진리를 체계화시켜 교리를 만들고 그 교리를 변호할 목적을 가지고 등장한 학문이 바로 조직신학이다.
그러므로 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학이란 교리 중심의 조직신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신앙의 학문이다.
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학공부에서 몽학선생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며 그것은 율법을 가리키고자 하는 것보다는 신앙의 기초 혹은 신학의 기초를 훈련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몽학선생의 역할은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나면 그 역할은 끝난다 하지만 그 역할로 예수님을 알고 배우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주의에 빠져 있는 복음주의자들은 “배우고 훈련받는 지정의 신앙”을 배격하고 오히려 저들을 율법주의로 몰아붙이며 거세게 거부하면서 ”은혜만 받으면 그만이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경륜이나 세월을 따지며 그것이 꼭 신앙과 연결되기나 한 듯 연조로 신앙을 측정하고 결정해 버리는 오류에 빠져 있으면서 “이미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거나” “그런 것은 몰라도 된다거나”“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 중에 문제다 성경을 보면 너무나 명확하고 확신하여 경험과 체험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이미 성경은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갖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직 말씀만을 통해서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을 때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았어도 즉 일반적으로 은혜를 받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신앙의 생활을 시작하려면 결국은 말씀을 중요히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처럼 뜨거운 체험이 없다 하더라도 말씀을 의지하고 그날을 기다리며 그 믿음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통해서 신앙이 회복되어야 하겠고 회복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게 배우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마음을 기울이어야 한다 말씀드렸지만 뜨거운 감정이 없을지라도 “늦은 비 내리심”을 믿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학공부에 다음과 같은 필요성을 참고하자
첫째, 조직신학과 교리는 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학공부을 건전하고 올바른 신앙을 정립하기 위해 필요하다.
오늘날 어떤 신앙인들은 "이상하고 마술 같은 신앙"을 참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아무 것도 아니하고 기도만 하면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앙이다
물론 기도는 참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아니하고 기도만 한다는 것은 신앙의 편중이 아주 심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이처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잘못된 신앙행위를 인식하고 건전하고 올바른 신앙행위를 육성하기 위해 회복을 위한 신학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연출하기 위해서 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학공부는 필요하다.
조직신학은 각 교파의 교리를 수호하는 역할만을 해서는 안된다.
조직신학이 각 교파의 교리를 수호하는 도구로 전락될 때 그것은 "치우친 신앙생활"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이제까지 조직신학이라는 학문이 때때로 여러 신앙인들의 배척을 받은 이유는 바로 조직신학이 "기독교의 교리"를 수호하는 넓은 차원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교파의 교리"를 수호하는 좁은 차원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교회에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하면 목이 굳어져 누가 부르면 목만 돌아가지 않고 몸도 돌아가게 되며, 주일 성경공부가 오히려 예배보다 중시되는 경향이 있는 침례교에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하면 머리가 두 배로 커지게 되고, 자세히 살필 겨를도 없이 무조건 손을 내밀어 안수하기를 좋아하는 오순절교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 손이 두 배로 커지게 된다는 농담까지 생기게 되었다.
조직신학은 자기 교파의 교리를 수호하려는 목적이 있기도 하지만 타 교파의 교리도 인지하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의 기본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타 교파의 교리도 수용하려는 목적을 가짐으로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셋째, 성경의 진리를 파괴하거나 슬며시 왜곡하는 이단을 방지하기 위해서 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학공부는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나는 어떤 파도 아닌 예수파이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은근히 자랑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물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입장에서 다 "예수파"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각 교파가 기본진리의 토대 속에서 나름대로 세운 조직신학적 체계를 우습게 여기는 언행은 삼가해야 할 언행이다.
왜냐 하면 그러한 언행은 가장 신앙적인 모습인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방에게 영적 교만이 가득찬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로 역사상 이단으로 단정되었던 몬타누스주의와 재침례파 등이 그러한 주장을 했었고 우리 주변에서도 자기 그룹만이 최고의 신앙을 가진 것처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직신학은 입술로만 "예수파"임을 주장한다고 하여 그 밖의 모든 이상한 주장조차 진리로 생각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즉 어떤 단체가 입술로 "예수파"라는 것을 주장한다고 하여도 내적으로 성경이 밝히고 있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어긋난 주장을 한다면 조직신학은 그러한 주장이 오류임을 밝혀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은 이단을 방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학문이다.
넷째, 그리스도인으로서 혹은 신앙 안에서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학공부가 필요하다
어떤 기독교 공동체에 10개의 그룹이 있다고 가정을 하자.
그 중에 한 그룹이 자기의 주관적인 계시에 의해서 "92년 10월 28일 휴거설"을 주장한다면 나머지 그룹이 그렇게 주장하지 않을지라도 그 공동체는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한 공동체는 자체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얼마지 않아 곧 공중 분해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고 온전한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조직신학은 필요한 것이다
다섯째, 조직신학을 기초로 하는 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학공부는 아름다운 신앙심을 지속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역사상 수많은 이단이 명멸했다. 그런데 어떤 이단은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졌지만 어떤 이단은 꽤 오래도록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다. 요즈음에도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단들이 있다. 이처럼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단들은 하나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체계화된 조직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한번 조직신학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체계화시키지 아니하면 그 아름다움은 지속되고 발전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형제회(Brethren Church)"라는 교단이 있다. 그들의 경건생활과 신앙적 태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범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교단은 오늘날 가장 급속도로 쇠퇴하는 교단 중의 하나이다.
왜냐 하면 이들은 "신앙심과 그 신앙의 열매만 아름다우면 되지 조직신학은 무슨 필요가 있는냐 그것은 진리를 상자 안에 가두는 것이다"고 하며 조직신학을 우습게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지속시키고 발전시킬 체계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에 우리는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캘빈의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16세기 초 루터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서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박해를 받게 되었다.
그때 캘빈은 개혁을 부르짖는 형제 자매들이 잔인한 박해를 받는 것을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개혁을 외치며 군중을 자기편으로 이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변호하기 위해 바젤시에서 조용히 붓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붓을 놓았을 때는 기독교 사상 가장 유명한 "기독교 강요"라는 책이 태어났습니다. 1536년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캘빈의 나이 겨우 26세였다. 칼빈이 26세에 저술한 이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 문헌 중 가장 귀중하고 영원히 남아야 할 책으로 지적이며 영적인 깊이와 능력을 소유한 천재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기독교 강요"가 나오자 세계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칼빈은 즉시 복음주의 신앙의 대표적 인물들 가운데 최상위의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개혁파 교회의 아리스토텔레스이며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 "기독교 강요"가 개혁주의 교리를 변호하는 조직신학 책으로 개혁파 장로교회가 이 책을 토대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교회는 오늘날까지 기독교계에 심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조직신학은 이처럼 아름다운 진리와 신앙심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1. 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학이란 무엇인가
본문 (유 1:3-4)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교리(교리, doctrine)는 사전적으로 종교상의 이치나 원리를 말하지만 실제는 신앙고백이다
(마 16:13-18) 성경을 탐험해 가는데 필요한 지도, 여행안내서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교리는 성경을 깊게 읽게 해 주고, 바르게 해석하게 해 주며 우리 신앙과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기초가 되며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잘못된 신앙과 신학을 분별하게 된다
그런데 성도들 스스로가 성경 자체를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방법이 확산되면서 교리를 소홀히 하게 되었고 딱딱하다고 생각되는 교리보다는 부드럽고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말씀을 좆다보니 신앙이 연약하게 되었고 교회도 성장과 부흥이라는 명목 하에 교리를 무시하게 됨으로 이단 사상이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은혜 중심에 신앙으로 나가게 되니“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의 신앙”이 되면서 현실 중시적 태도가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조금만 현실에 어려움이 있어도 이내 쓰러지고 실족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연약한 믿음으로 세워져 광야의 생활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즉 성경이 중요하게 말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교리서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 소교리문답Westminster Large and Short Catechism (영국, 장로교회)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 Heidelberg Catechism (독일. 개혁교회)가 있다
1. 믿음과 믿음의 도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
1)믿음이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언약관계
2)믿음의 도란? 믿음의 내용에 대한 체계적인 진술 *믿음과 믿음의 도는 분리될 수 없다!
2. 교리(dogma)의 정의?
“바른 교훈” - 올바른 가르침, 바른 분별력을 키우는 말씀
cf. 신학(theology)이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3. 교리에 대한 편견: 교리는 딱딱하다, 교리는 어렵다, 교리는 특별한 사람이 배운다?
-그러나 교리를 배우지 않고서 어떻게 이단을 분별하며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지킬 수 있는가?
4. 교리가 주는 유익
(1)교리는 믿음의 기초이다.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2)교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필수적이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교리는 일군의 자격이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4)교리는 교회를 위기에서 보호한다. (딤후 2: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요일 4: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5)교리는 우리를 든든히 보호한다. (행 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6)교리는 위로를 준다. (살전 4: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5. 교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1)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2)믿음의 증진을 위하여
(3)이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6. 신학의 구조: 성경신학 > 조직신학 > 역사신학 > 실천신학 > 선교신학
7. 교리의 뼈대: 서론 > 성경론 > 신론 > 인간론 > 기독론 > 구원론(성령론) > 교회론 > 종말론
8. 지식을 얻는 원천
(1)자연
(2)역사
(3)성경
(4)경험
9. 지식을 얻는 수단(도구)
(1)계시
(2)이성
적용: 계시 아래 이성을 복종시키는 삶 = 신앙의 기초
교리는 신앙의 골격이다.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신앙생활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