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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기독교교육 -Martin Luther의 (신학적)교육사상을 중심으로

목차

I. 들어가는 말

II. 종교개혁기의 상황과 교육의 고찰

1. 종교개혁 초기의 상황

2. 종교개혁 시기의 교육의 상황

III. 루터의 교육사상의 신학적 기초

1. 루터의 인간론(Disputatio de homine)

2. 루터의 기독론(Christologie)

3. 루터의 성경론(Lehre uber Bibel)

4. 루터의 교회론(Lehre der Kirche)

IV. 루터의 교육사상의 실천과 내용

1. 루터의 교육목적

2. 루터의 교육과제

3. 하나님의 말씀의 교육

4. 하나님 말씀의 교육의 의미

5. 종교개혁 시기의 국민교육으로서의 종교교육

V. 나오면서 - 현대교육사에 미친 루터의 공헌




I. 들어가는 말



마틴루터의 인생(1487-1546)은 카톨릭의 신학자와 사제로서의 삶의 부분(1521년 1월 3일 파문; 그해 5월 8일 추방령)과 카톨릭 에 대항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신학자와 목회자로서의 삶으로 나누어져 있다. 카 톨릭의 갱신을 소망하였던 한 신학자의 열의는 역사의 흐름에서 가장 위대한 개혁의 불길을 붙이게 되었다. 종교개혁에 대한 논 쟁은 당시의 세계관의 흐름을 다른방향으로 물꼬를 트는 역할를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카톨릭 교회의 교권주의에 의해 간신히 억눌리고 있었던 종교, 정치, 사회의 세력들의 힘이 일시에 화산의 용암과 같이 폭발하는 상황에 다다르게 되었다. 종교(카톨릭) 의 개혁에 대한 운동은 그 이전부터 다양하게 존재하였으나 왜 루터를 기점으로 종교개혁운동이 전유럽에 확산 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였다.(아래참조) 이 글에서 필자의 의도는 마틴루터의 신학적 입장에서 견지한 교육에 대한 사상들을 고찰함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II. 종교개혁기의 상황과 교육의 고찰



1. 종교개혁 초기의 상황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이 성공하게 된 것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의한 역사와 종교개혁가들의 열성 그리고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 구조에 기인한다. 1000여년간의 오랜 전통과 절대적 권위로 군림한 교황주의 구조의 신성 로마제국은 교황 레오 10세(Leo X )에 이르러 베드로성당 신축을 위한 재정을 위한 모금의 방법으로 면죄부를 파는 행위를 종교적으로 합리화하였다. 면죄부에 대 한 모든 권한을 가졌던 도미니크 수도회의 설교자 테첼(John Tetzel)은 각 나라를 돌면서 돈을 모금함에 집어넣으면 본인의 죄가 사해질 뿐만아니라 연옥에 가있는 먼저 죽은 사람의 죄도 사하여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외치고 다녔다. 이에 반대하여 마틴 루터 는 1517년 10월 31에 비텐베르그(Wittenberg) 성문에 95개항의 항의문을 내걸었다. 루터는 자신의 행동이 다가오는 역사에 어떠 한 결과를 야기할지를 인식하지 못한체 카톨릭의 사제와 신학자로서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 께 어떻게 받아 들여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고뇌하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95개조의 논제를 못박았다.


루터는 논제에서 참된회개와 참회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하나님과 인간의 영혼을 중재할 수 있는 인간을 아무도 없다고 주장하 면서 면죄부가 죄책을 면하게 할 수는 없다고 단언하였다. 전반적인 이러한 논제의 주장은 교황에게 적대적인 것이 없었지만 독 일의 정치적 상황은 메마른 건초에 불티만 티기를 바라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하여 독일의 주교와 로마의 교황청은 95개조의 논 제의 철회를 요구하였으나 루터는 이를 거절함으로서 종교개혁의 불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종교개혁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교회의 권위로 부터 벗어나 독자적 권력을 구축하고자 하였던 당시 독일의 선제후들의 정치적 입지강화와 맞아 떨어졌 다. 그래서 소수의 선제후들은 루터의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루터를 보호하였다. 이후에 독일은 구교와 새로운 종교적 세력으로서 의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로 나뉘어졌다. 결정적으로는 1521년 보름스(Worms)회의에서 거행된 루터에 대한 종교재판에서 루터 는 카톨릭으로 부터 파문 당하게 되었다. 루터는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황제의 앞에서 행한 루터의 변론은 잊혀질 수 없는 변론이 다. "내가 여기에 섰나이다. 나는 달리 할 수 없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Hier stehe ich, ich kan n nicht anders, Gott helfe mir! Amen!) 루터 개인의 견해로서의 95개조 반박문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당시의 교권주의에 기반한 세계상을 변화시키는 역사적 사건으로 불이 붙게 되었다.


2. 종교개혁 시기의 교육의 상황



그 당시의 통속적이고 종교적인 교육은 대학과 몇 개의 공민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로마교회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있었다. 15, 6세기에 있었던 교육기관은 다음과 같다. 수도원학교, 대학교, 길드학교, 기사교육, 공동생활형제단학교등이 있었다. 대부분의 교육제도는 교회의 주장과 이익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의 교육적 상황에 대하여 루터의 후계자인 필립 멜랑히톤은 다음 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이 가련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심한 무지와 어리석음 가운데 버림받은 것을 무엇으로 변호할 수 있는가? 이러한 비 참한 불행을 볼 때 나의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픈지... 그리고 사람의 기능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있는 것과, 배우고 이해할 능 력이 충분한 사람이 창조주와 주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누가 슬퍼하지 아니하겠는가?"



기독교교육사적인 측면에서 종교개혁 이전의 교육적 측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세 로마교회 자체는 종말론적으로 예수의 재림을 기다렸던 초대교회 보다는 교황을 신의 대행자로서 이해하였던 교권적 구조이었다. 예수그리스도와의 신앙적 만남 보다는 신비화되었던 하나님의 존재의 인식 경험을 신비적인 성만찬의 참여를 통하여 추구하였다. 교회에서의 모든 교육의 행위의 목적 은 신앙적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교회를 봉사하기 위한 준비로서 이해하고 시행되었다. 교회의 교권주의적 신앙구조는 교육의 형식마저 하나님중심, 생활중심, 신앙중심 보다도 오히려 교권적 제도와 교리의 보존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전통적인 교회 에서의 성도의 교제와 신앙교육의 현장 그리고 가정에서의 교육은 로마교회의 형태에서는 외면당했다. 즉, 교회에서의 기독교교 육은 교권의 보존과 교회의 봉사를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었다. 때문에 종교개혁 시기까지의 기독교교육은 크게 두가지 점에서 비 판되어 져야만 한다.


1) 기독교교육은 단지 교권주의의 확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교육은 결국 하나님을 교회안에 가두고 세속 가운데 삶의 터전을 가진 대중들의 소외와 신앙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 중세교육은 성직자와 귀족의 자녀만을 위한 불평등 교육이었다. 이러한 교육은 사회에서의 이원적인 계급형성과 양극화 현상 을 초래하였다. 이는 대중들의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는 불평등교육을 양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하여 루터는 "독일 귀족에게 드리는 글"(An den christlichen Adel deutscher Nation von des c hristlichen Standes Besserung, 1520)에서 교육체계의 개혁으로서의 교회의 개혁(Reform der Kirche als Reform des Bildungssy stems)을 염두에 두었으며 이를위하여 인간의 최상의 교훈으로서의 성경과 복음(Bibel und Evangelium als vornehmste Lektion) 을 제시하였다.



III. 루터의 교육사상의 신학적 기초



1. 루터의 인간론(Disputatio de homine)



루터에의하면 인간은 성경의 진술에 근거하여 두가지 특징으로 구별된다.


첫째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는 명제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로서의 인간이다.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 의 피조물이라는 의미는 인간이 죄와 부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피조물이 회복 되기 위해서는 전체 적인 인간의 몸과 영혼이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속받고 성령에 의해서 성화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다. 인간이 탐욕에 의하여 타락함으로서 본래 소유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상 실하게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 형상 대신에 죄에 굴복하여 악마의 형상을 갖게 되었다. 타락한 인간은 완전히 부패하였다. 아담 과 하와의 죄는 전 인류의 죄가 되었고, 인간은 하나님의 영원한 화와 심판 밖에 받을 것이 없게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으로 지음받을 때 받은 자유의지도 부패하게 되었다. 인간의 모든 죄악은 인간을 전적 타락한 존재로서 만들었고 완전히 부패한 인간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결국 타락한 존재로서 인간의 구원은 율법에 의하여 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완 성된다는 것이 루터의 인간론이다.(롬3:28)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인간은 죄로부터 자유(Freiheit von der Sunde)인 동 시에 하나님을 위한 종(Sklave fur Gott)이다.



2. 루터의 기독론(Christologie)



루터의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다. 그는 자신의 기독론을 자신의 저서인 "탁상담화"(Tisc hreden)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루터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품격과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구분된다.


1) 그리스도의 품격: 루터의 기독론은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Deus in Christo), 즉 그리스도 안에 계신 은총 과 자비의 거룩한 하나님에게서 출발한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숨겨진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동일시 된다. 그의 기독론적 신학은 그의 "십자가의 신학"(Theologie des Kreuzes))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을 아 는 참 지식은 십자가의 신학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를 통하여 이해되고 알 수 있 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또한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또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는 사람의 육신 가운데 나타나신 하 나님의 계시이며, 육 안에 숨겨진 하나님이시다.


2)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스도의 사역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라는 명칭에 나타난 삼중직무와 관련하여 소개된다. 즉, 왕과 제사 장 그리고 예언자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소개하기 위하여 중보자, 예언자, 제사장 그리고 교회의 머리라는 용어를 사용 하였으나 구별하지는 않았다.루터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로 생각한다. 십자가 상에서의 고난과 죽음 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화해를 성취함으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객관적인 속죄의 길을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과 기쁨의 근거이며, 영생의 길이다.



3. 루터의 성경론(Lehre uber Bibel)



로마교회의 교리와 전통과는 달리 루터에 의한 성경의 재발견과 재해석은 종교개혁의 표면적 원리를 유일무오하고, 신앙과 생활 의 원칙인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기초를 두었다. 성경에 대한 루터의 이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육신한 말씀 -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둘째: 기록된 말씀 -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고 보존된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인간에게 말씀 하신다. 루터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의어로 사용한다. 성경은 유일한 진리의 근원이고 인간언어로된 하나님의 계시로 볼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인류의 교사와 심판자로 존속된다.


셋째: 선포된 말씀 -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의 선포 가운데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고 인간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예수 그 리스도를 대하게 된다.


루터의 성경론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성경해석에 대한 입장이다. 종교개혁의 표어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이고 구체적인 성경해석 에 대한 방법으로서 루터는 Sola Fide(오직 믿음만으로)로서 종교개혁의 실천적 원리를 제공하였고, Sola Scriptura(오직 성경만 으로)로서 형식적 원리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표어에서 나온 루터의 성경해석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유명한 구절에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그의 성경해석의 중심에는 항상 기독론적 핵심이 놓여있었다.



4. 루터의 교회론(Lehre der Kirche)



루터의 교회관은 그의 전생애를 통하여 여러 번 변화하는 과정은 거친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수도사로서, 개혁운동을 시작한 후에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앞에 섰을 때 루터의 교회관은 차이가 난다. 루터의 교회론은 의인론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기독론 그리고 교회론은 깊은 상관관계를 갖게된다. 루터가 말한 교회의 과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교회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일이다.


둘째: 성도들의 교회에서의 사랑의 봉사활동이다.


셋째: 제사장적 책임이다


넷째: 성도간의 거짓없는 형제애이다.


다섯째: 세계 속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다.


IV. 루터의 교육사상의 실천과 내용



1. 루터의 교육목적



루터의 교육목적은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 이보다 더 높고 고상한 교육목적은 없다. 구체적으 로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이웃과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달성하는 것이 그의 교육목적 이었다. 이것은 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이웃에 대하여 봉사하는 생활, 즉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을 위한 사랑의 구조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의 영광을 나타내고 이웃에 대해 사랑을 행하는 것이 루터의 교육목적이다.



2. 루터의 교육과제



루터에게서의 교육의 과제는 기독인의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규율있게 양육하고 피차 존경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여 지식의 증진과 인격의 도야를 성취하는데 있다. 루터에게서 기독교는 인간의 가장 고상한 관심사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모든 생활의 기반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성경에서의 구체화된 기독인들의 생활원리가 사람들의 일상생활 가운데 서 살아 움직이고 실천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실천이 바로 평화와 번영과 질서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로 루터는 종교교육과 도덕교육, 즉 아이들을 크리스챤 신사숙녀로 육성하는 것을 교육의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종교적이고 도 덕적으로 행한 통합적인 교육이 루터에게서의 기독교교육(die Christliche Zucht)이다.


루터는 또한 교육의 과제로 하나님께 대한 봉사(Gottes Dienst)를 말하고 있다. 인간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섬길 수가 없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의 동료인간들에 대한 헌신된 사랑의 봉사를 통해서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입증할 수 있다. 즉, 보이는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참된의미에서의 교육은 인간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상호종속 및 상호봉사의 구체적인 체험이 그 원동력이 되는 공동사회교육(Gemeinschafterzieh ung)을 지향할 때 의미가 있다. 교육과제에 대한 모든 고려는 결국 인간에 대한 존경, 신앙생활, 영적이고 도덕적인 생활, 육체 적인 안녕 및 인간의 건전한 교육 등을 증진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루터에게서 교육의 큰 사명은 인간의 계발에 있다. 교육은 하나님꼐서 부여하신 아이들의 천부의 재능과 기능들을 어떻게 잘 이 용할 수 있도록 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은 영적인 성장과 타락으로 인하여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회복을 위한 도야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도야교육은 전인적인 인간(totus homo)의 계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육체적, 사회적 , 지적, 문화적, 도덕적, 그리고 종교적인 교육이 행해져야만 한다. 이러한 여섯가지의 교육은 삶 자체와 연결되어서 실행되어야 만 한다. 루터에게서 삶은 언제나 형성과정(Prozeß im Werden)으로 이해된다. "크리스챤은 완성된 가운데 있지 않고 아직 형성도중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에게서의 교육에 의한 인간변화의 한계는 분명하다. 교육에 의한 인간의 개 선은 본질면에서의 어떠한 변화가 아니라, 인간이 행하는 업적의 결과 면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다. 이는 인간의 전적타락에 대한 루터의 강조는 교육에 의한 인간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개선론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루터에게서 교육의 목적은 언제나 인 간의 순수이성이나 세상학문이 충분히 줄 수 없는 더 높은 목표와 더 고상한 지식에 이르려는데 있다. 이러한 점에서 루터의 교 육은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이성과 학문을 초월하고 능가한다고 확신하면서, 신의 계시에 관한 이 원리는 영원불변의 영역에 속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루터의 교육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그의 목표로 하는 기독교적 세계관(Christ liche Weltanschauung)을 지향하고 있다.



3. 하나님의 말씀의 교육



1) 성경교육을 가능케한 역사적 배경



종교개혁기의 기독교교육은 중세 카톨릭에서 행한 상징을 중심한 교육을 탈피하여 프로테스탄트적 교육으로서 하나님과 인간과 의 직접적인 관계를 위한 목적으로서 성경중심의 교육을 실행한다. 성경중심의 교육은 필연적으로 언어적인 교육이 중요하게 여 겨졌다. 때문에 중세의 상징을 중심한 교육은 비언어적 성격으로 인하여 교육의 내용에서 배제된다. 성경중심과 언어중심의 교육 으로의 전환을 가능케한 배경에는 두가지 요인이 전제된다.


첫째, 종교개혁 당시의 인쇄술의 발명이다. 구텐베르그에 의한 인쇄기술의 발명은 수작업에 의한 기록을 기계적인 작업에 의한 다량의 인쇄를 가능케 함으로서 인류의 문화사적 의미에 큰 공헌을 하게된다. 이는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루터의 독일어 성경번역 을 다량으로 배포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둘째, 고전문헌학이 발생하여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고전의 재발견과 고전의 연구는 구전문헌학을 발흥케하였다. 이 고전문 헌학과 고전학에 대한 흥미와 연구는 중세와 근세의 중간기에 있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지닌 막강한 전 달력과 힘을 자각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환경은 필연적으로 당시의 대학의 교과과정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두가지 요인은 종교개혁자들이 행위보다는 신앙을, 상징보다는 말씀을 강조하는데 상당한 공헌을 하게된다.



2) 성경의 번역과 보급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은 모든 기독인들이 사제를 통하여서 성경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개별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생 각하였다. 성경을 통해서만이 개신교의 기초가 굳건해 질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최우선적으로 성경을 각나라의 말로 번 역하는 작업을 시행하였다. 루터의 라틴어의 독일어 성경번역이 그 효시이었다. 당시의 역사.기술적으로 인쇄기술의 개발은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되었다. 이후에 루터는 독일어 성경의 반포에 진력하면서 말씀을 통한 종교 개혁의 횃불을 드높였다.



3) 성경중심의 교과과정(Curriculum)



루터는 각급학교에서의 성경중심의 교과과정을 편성하도록 장려 하였다. 그는 우선적으로 대학의 학과개혁의 문제로서 성경중심 의 교과과정을 생각하였다. 그 후에 초등교육의 교과과정 개혁에서도 성경중심의 방향을 시도하였다. 이는 각학교에 있는 기존의 커리큘럼에 내재한 이교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항거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생각은 실천적으로 진행되어 각급 학교의 커리큘럼 내용에 성경의 핵심적 내용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러한 루터의 입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인간이 참으로 인간다 울수 있다는 그의 확신에서 비롯된다.



4) 교리문답교육



성경의 독일어 번역에 의한 보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접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어린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문맹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역시 어려운 책으로 여겨졌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 위하여서는 성경의 핵심적 내용을 요약하고 해 설한 지침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은 인식하였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의 핵심적 내용으로서의 지침서를 " 요리문답서" (Katechismus)로 정형화하였다. 루터는 요리문답서를 성경과 대립하고 병립한 것으로서 보지 않고 단지 성경의 요약 혹은 작은 성경이라고 불렀다. 루터의 소요리문답서(Der kleine Katechismus)는 자신이 설교를 통해서 강해해 왔던 십계명 , 주기도문, 신앙고백(사도신경), 아침-저녁기도, 오전-오후기도, 회개에 관하여, 가정구성원의 과제에 관하여, 직분과 직책에 관하여, 목사를 위한 세례집전 지침서를 묶어서 1529년에 출간하였는데 이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하고 알기 쉬운 기독교적 가르침의 지침서로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의 대교리문답서(Der große Katechismus) 는 소교리문답서에 대한 보충과 확대, 심화의 성격을 갖고서 내용은 소교리 문답에서 다룬 십계명, 신앙고백, 주기도문과 더불어 세례, 성만찬, 회개를 다루었는데 이는 교육적인 측면보다는 조직신학적인 차원에서 더 많이 취급되고 영향을 미쳤다.



4. 하나님 말씀의 교육의 의미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한 교회교육은 상징주의에 대한 엄격하고도 신랄한 비판위에서 신언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이는 상징과 비 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함으로서 상징교육과는 세가지 점에서 구별하였다.


1) 성경은 하나님의 은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되고 완성되었음을 말한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일회 성을 지니고 독자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는 카톨릭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다. 카톨릭교회가 상징주의적 교육입장에서 성례 전이라 예배를 반복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반면에 개신교는 성례전과 예배가 그리스도의 일회적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강조 한다.


2) 개신교는 이 일회적인 하나님의 은총의 계시가 현재를 사는 인간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를 중요시 하였다. 그래서 인간의 언 어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남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위치를 차 지하면서, 인간의 말로 행하는 설교도 역시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 로마 카톨릭교회의 상징과 예전중심과는 다른 입장에서 개신 교는 성경중심을 통하여 예배 가운데 언어를 중히여기게 되었다.


3) 하나님 말씀의 교육과 이전의 상징주의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자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여파로 우상의 파괴와 성 상의 거부는 필연적으로 주장되었고, 이러한 요소는 개신교 교회의 기독교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5. 종교개혁 시기의 국민교육으로서의 종교교육



종교개혁기의 교육이 이루어 놓은 또 하나의 형태는 국민교육의 형식 안에서 종교교육이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개신교 교회의 인간형성은 단지 교회 내의 교육에 머물지 않았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입장에서 중세의 성직자 중심의 교육을 탈피하여 기독교 가정의 교육적 의무와 책임을 주장하였다. 그는 교회 중심의 교육으로 부터 기독교 가정을 중심한 교육의 회복을 강조하였다. 루 터에게서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의 권위를 갖게된다. 때문에 부모의 교육적과제는 어린이를 다스릴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을 가르치고 이를 삶으로 구체화하도록 도와주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가르침을 받은 자녀는 하나님과 세계에 대하 여 의무와 권한을 갖게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책임있는 주체자가된 사람은 동시에 공동체와 관련을 갖게된다. 루터에게 있어서 이 공동체는 교회가 되는 동시에 국민공동체가 된다. 그래서 독일에서 국교회운동이 시작된다. 루터에 있어서 모든교육은 국민을 위한 것이기에 교회의 교육도 필연적으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교육이었다. 루터는 학교와 교회를 국가의 보호 아래 두도 록 하였으며 국가로 하여금 당시의 독일 교육을 통제하도록 만드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루터에게 있어서 교육은 종교교육과 도 덕교육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도덕교육이란 어린이들이 기독교적인 신사, 숙녀로 육성하는 것을 의미하며, 종교교육이란 사람들 이 종교의 궁극적 목표인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교육을 위하여 중심교재로 교리문답서에 포함된 십계명, 주기도문 그리도 사도신경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국민교육은 교회에서 실행하는 기독교교육과 깊은 연관을 가지게된다. 회중이 성경적으로 사고하도록 교회에서는 말씀이 예배와 삶 속에 깊이 관여할 수 있도록 개혁자들은 대중에게 글을 깨우쳐주는 학교를 세웠다. 강한 종교적 정열이 백성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배우도록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강력한 국민의무교육이 실행되었다. 새로운 학교들이 교회와 정부의 공동적인 노 력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지역사회에서 교육을 가장 많이 받았던 목회자는 학교의 주임교사, 학사 감독관의 역할을 행하였으며, 지역교구의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의무가 지워졌다. 국민교육의 학교제도는 두차원으로 구별되었다. 상급반은 문법학교로 서 장차 사회와 교회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을 교육하였으며 대학에로의 진학을 준비하였다. 하급반은 국어학교로서 어린이들에게 기초적인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루터에게 있어서 종교와 교육의 가치는 동일한 위치에 있다. 가르치는 직무에 대한 루터의 평가는 설교하는 직무에 대한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 둘의 차이는 그 본질과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형식에 있을 따름이다. 루터에게 있어서 인간은 세가지 조직체(기관) 가운데서 태어나 이들 밑에서 인간생활이 형성된다. 가정과 국가와 교회가 이러한 조직체인데, 서로 유기 적인 관계하에서 통일을 이루어간다. 가정과 국가와 교회는 이 분야(교육)에서 서로 협력하고 있으며, 그 보조기관은 학교이다. 곧 부모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며, 국가당국은 학교를 세우고 보존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또한 게으른 부모들로 하여금 그 들의 자녀들의 학교출석을 권하게 해야하며, 끝으로 교회는 국가의 조력 밑에서 가르치는 일과 감독하는 일과 관찰하는 일에 진 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V. 나오면서



현대교육사에 미친 루터의 공헌을 피력한 반피득의 글을 소개하면서 종교개 혁가요, 교육개혁가였던 마틴루터에 대한 글을 맺고자 한다.


(반피득, 기독교교육, 1966 pp.26-27):


1)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2) 특권계급에만 허용 되었던 교육을 국민교육으로 발전시켰다.


3) 여자와 남자의 동등교육권을 주장하였다.


4) 도시마다 직업학교를 설치할 것을 강조하였다.


5) 교육을 국민의 의무이며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국립학교의 운영을 위한 세금징수를 역설하였다.


6) 의무교육의 확립을 주장하였다. 교육을 국가가 직영할 뿐만 아니라 국가 법으로 국민이면 누구든지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 할 것을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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