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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세 가지 용도 (1)

율법과 성령(Exkurs)


들어가는 말


율법의 세 가지 용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말하자면 율법은 인간을 위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율법의 시민적 용도에로 눈을 돌린다.

율법의 이 시민적 또는 정치적인 용도는 한 마디로 창조주인 동시에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자든 아니면 이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 간에 모두에게 유익되게 적용될 수 그 무엇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멜란히톤과 루터 그리고 칼빈의 견해를 점검하면서 그 의미를 점검하려고 한다.


A. 정치적 또는 시민적 용도(usus politicus seu civilis legis)


1. 멜란히톤은 율법의 제 1용도를 paedagogicus seu politicus usus(교육적 또는 정치적 용도) 또는 civilis usus(시민적 용도)로 표현했다.

하나님은 비록 중생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규정에 따라 살기를 원하심을 지적함으로써 그는 제1 용도를, 질서를 중요시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시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율법은 가르치며 공포와 형벌로써 사회일원들을 규정 아래, 외적인 행위에 대한 모든 계명에 따라 지키도록 강요한다"라는 그의 발언과 통한다.


그러면 이런 질서가 유지되려면 어떤 조치가 있어야 될까?

멜란히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몸의 지체의 절제를 명시함으로써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는 요인임을 암시한다. 그는 여기서 세 가지를 지적했다.

⑴ 혀로서 하나님에 대하여 분노의 말을 해서는 안되며 동시에 이웃에게 거짓을 금하며,

⑵ 손을 남을 죽이고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되며,

⑶ 몸은 외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을 행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멜란히톤의 이런 지적내용은 수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에 대해 바른 관계가 무너지고 수평적인 차원에서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질 때 사회질서가 무너짐을 암시한 것이다.

사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이 두 가지 관계인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로 기울이자 이웃나라에 붙여 전쟁으로 그들의 삶의 여건을 파괴하는 것을 보았으며 또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말 한 마디 때문에 또는 한 사람을 죽임을 통해 전쟁이 일어나는가 하면 정변이 일어난 것을 보았다.


멜란히톤이 여기 언급한 세 가지는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원인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 사회의 질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기구가 필요할까?

멜란히톤은 정부가 이런 치리를 위해 법, 교훈, 형벌, 육체적인 제재 등을 제정케 했다고 지적함으로써 율법의 제 1용도가 일반은총과 연관됨을 보여준다.


일반은총이란 인간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로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선물로 부여하신 내용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태양, 물 등 자연적인 여건이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 체제, 가정 등등 그리고 죄의 횡포를 막기 위해 주어진 것들이다.

그 중에 성도덕을 타락에 제동을 거는 성병도 여기에 속한다.

특별은총이란 인간을 구원하는데 동원된 하나님의 장치들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성경, 교회,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은혜 등등.....


멜란히톤은 율법의 제 1용도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외적인 도덕을 지키는 것을 원하시며 그들이 이것을 지키지 않을 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재앙으로 벌주심을 강조함으로써 율법의 제 1용도의 주권자가 하나님임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는 이 제1용도가 죄용서함을 얻는데는 아무런 역할을 못함을 집고 넘어간다.


그러면 멜란히톤은 율법의 제 1용도를 왜 paedagogicus usus(교육적 용도)로 표현하나?

그는 딤전 1:9에 근거하여 이 질문에 답한다: Lex est iniustis posita; id est, Deus coherceri vult etiam impius, ne externa delicta committant(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그는 여기서 갈 3:24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율법은 그리스도 안의 교육자'(Lex est paedagogus in Christum)라고 대답함을 통해 몽학선생으로서 율법의 기능을 율법의 제 1용도와 연관시킨다.

멜란히톤이 복음 곧 성령이 이를 통해 복음을 가르치고 듣는 것을 제 1용도에 포함시키는 것은 루터와 다른 점이다.


2. 그러면 루터는 율법의 제 1용도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우리는 루터의 주장을 그의 갈 3:19 주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여기서 율법의 제 1용도를 civilis usus(시민적 용도)로 표현한다. 루터의 주안점은 "하나님은 시민법, 진실로 모든 법을 제정토록 하시어 죄악을 어거하게 하셨다.

따라서 모든 법은 죄를 방해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는 말 가운데 나타난다.


루터는 세상과 타락한 인간의 문제점을 깊이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악하고 미친 세상과 인간을 묶고 어거할 '밧줄'이나 '사슬' 등과 같은 용어를 반복해서 말한다.

또 율법의 제 1용도와 연관하여 루터의 발언 속에는 '어거하다'(cohercio)라는 단어가 매우 자주 나온다.

그러면 이 죄악을 어거하는 수단은 무엇인가?


루터는 "정부, 부모, 선생, 법, 수갑 그리고 모든 시민 규정"(Magistratus, Parentes, praeceptores, leges, vincula et omnes ordinationes civiles)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멜란히톤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 수단을 지적한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루터가 이런 수단을 통해 죄악을 어거하는 것이 사단을 어거하는 것과 연관됨을 지적한 것이다.

루터는 자연 속에 사단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음과 또 이 세상이 사단의 지배를 받아 온갖 범죄를 저지르게 함을 주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루터는 멜란히톤보다 인간 문제를 더 깊이 간파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루터의 이런 인간관 곧 인간이 외부의 어떤 권세와 연관되어 있다는 인간관은 철학적인 인간관 내지 세속적인 인간관과 구별되는 것이다. 이 후자들은 인간은 단독적인 존재로서 판단하고 자의로 행동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루터의 이런 발언은 바울 신학의 중요한 면을 드러낸 것이다.

사단은 육신이 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모두 육인 것이다.

육이란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가 단절되어 자기 마음대로, 인간의 이성의 추구함에 따라 사는 인간을 의미한다.

이런 육은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영광 또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육인 인간은 육신의 정욕에 따라 사는 자들을 의미한다. 성경은 사단이 이런 육인 인간을 지배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면 무슨 목적으로 하나님은 시민법을 설치하셨을까?

루터는 '공공의 평화, 만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또 복음이 전진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루터는 율법의 제 1용도가 인간의 삶에 필요한 것이지만 칭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확실하게 말한다.

독일의 루터파 신학자인 Elert에 의하면 루터는 율법의 정치적 용도usus politicus(정치적 용도)가 악 그 자체 그리고 악한 인간을 붙들어 매어 이것들이 우리의 지상생활의 삶의 조건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게 하는데 있음을 지적함으로서 이 세상 법질서가 하나님의 통치 기관임을 지적함을 볼 수 있다.

멜란히톤이 율법의 제 1용도를 하나님의 통치의 시각으로 해석했다면 루터는 복음의 확산의 관점에서 해석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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