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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스승되신 성령님

요14:16-2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위대한 멘토 =>예수 그리스도 , 성령 성공을 위한 조건으로 요즘 회자되는 것 중 하나가 멘토 혹은 멘토링 시스템이라는 말입니다. 멘토라는 말은 인생의 안내자, 본을 보이는 자, 양육자, 상담자, 스승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멘토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삼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성공에 이르게 하는 능력과 확신과 잠재력을 개발하여 주는 두 사람간의 관계를 멘토링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멘토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고 인생의 참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스승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보혜사로 이 땅에 오시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셨으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요14:16,눅4:18)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구원의 사역을 마칠 즈음에 우리에게 다른 한 가지를 약속하시는데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주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시기에 육신의 한계를 가지고 계십니다. 육신의 한계란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만나주실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만나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든지 군중이 모여 있을 때 주님을 만나고자 어떤 이들은 지붕을 뜯기 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성령께서는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무소 부재한 능력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만나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의 말씀이 오늘 본문 16절 이하에 있는 말씀입니다.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왜 오셨는지 그분하고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인지 ...여러분도 지금까지 성령에 대한 말씀을 여러 차례 들으셨을 것입니다. 저도 수차례 성령님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님과 동역하라, 말씀과 성령의 관계는 무엇인가, 성령님은 바로 나를 위해 계신다”...등 그런데 우리가 그 말씀을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지만 실생활로 돌아가면 성령님과 진정한 교제 없이 다시 내 생각 중심, 내 형편중심으로 행동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세례를 받고 또 계속 재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지 않으면 십자가의 비밀을 알지 못합니다. 은혜의 맛, 기도의 맛을 모릅니다. 말씀의 달콤한 맛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결혼해야 결혼의 신비를 아는 것처럼 성령을 받아야 천국의 신비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교회에 나온 첫날부터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은지 얼마되지 않아도 성령세례를 받으면 새 사람이 되고 새 피조물이 되고 천국의 사람이 되지만, 교회를 평생 다녀도 성령을 알지 못하면 은혜의 맛도 모르고 교회의 신비도 모르고 늘 왔다갔다만 합니다. 성도에게 성령받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니 주님께서 성령받기 이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도가 성령님과 거리가 멀어지면 신앙은 반드시 하향곡선을 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의 열정은 식어지고 마음이 냉냉하며 작은 문제에도 크게 넘어집니다. 오늘 저는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령님은 영원히 함께하시는 스승이십니다.(16-17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님은 다른 보혜사로, 진리의 영으로, 스승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깨닫게 하십니다. 영적인 성숙으로 나가게 하시고 인격을 바꾸어 주십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십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아가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한 인격을 닮아가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요즘 인터넷교육이 발달하다보니까 인기있고 경쟁력있는 교사는 뜨는데..강사 5명 정도는 각자의 연봉이 20억 이상이 된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어느 한 영어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40만명이 인터넷으로 몰려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는 좋은 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좋은 스승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위대한 스승을 한번 만나서 가르침을 받는 것만으로도 귀한 일인데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님은 우리의 스승이 되셔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히 계신다고 하십니다.(16절) 주님이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은 우리를 세상에 홀로 두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6절의 말씀에 보면 “함께”라는 말이 나오는데 중요한 단어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영원토록,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성령은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십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는 이 세상에서의 인정받는 잠시잠깐의 성공의 자리가 아닙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구원을 받는 것, 믿음의 최종목적지는 천국입성입니다. 그런데 삶의 여정에 계속되는 시험과 도전은 우리 스스로는 너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이 약함을 도우시기위해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천국 가는 그날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또 천국에서도 성령님은 여전히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또 우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계시고 교제하는 것을 ‘성령충만’이라 말하고 그분이 우리를 붙들고 일하시는 상태를 ‘성령의 역사’라고 표현합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우리를 강제적으로 어떻게 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주님을 향해 문을 열 때, 성령은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교제할 때 주님은 나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은 주님과 내가 인격적으로 하나되는 사건입니다. 원래는 둘인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지니신 분이십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은 삼위이면서 일체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했습니다(요5:17).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라고 했습니다. 요14:10에 보면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요15:10에 보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성부하나님과 하나됨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9-20절의 말씀을 보면 더 중대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천기누설과 같은 말씀입니다. 다같이 19-2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요14:19-20)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 조금 있으면 세상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데 너희는 나를 보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을 이야기합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모든 사람이 왕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볼 것입니다. 그때는 감춤이 없습니다. 계1:7에 보면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의미하는 “그날”은 재림의 날이 아니라 성령충만을 경험하는 그날을 의미합니다. 성령충만하면 우리 눈이 무엇을 본다고 했습니까. 하나됨의 신비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놀랍고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 속에 계신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 하나됨의 비밀과 축복이 이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내 맘속에 내주하시면 영적인 커튼이 열립니다. 희미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영적인 것을 누리십시오. 더 성령충만을 구하십시오. 가스렌지 위에 물을 올려놓고 불을 가열합니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물이 조금씩 요동하기 시작합니다. 물이 끓는 점을 비등점(boiling point)이라고 하는데 비등점이 이르게 되면 물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합니다, 물은 100도가 되면 끓습니다. 물의 온도가 100도가 되도록 계속 가열해야 합니다. 한 80도까지 가열하다가 포기해버리면 물은 끓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크게 동할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도의 불을 때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펄펄 끓고 있는 상태입니까? 아니면 미지근하게 식어진 상태입니까?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 용불용설(用不用說, use and disuse theory)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용불용설은 쓰면 쓸수록.. 쓰는 부분이 발달된다는 이론입니다. 오래 쓰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한 기계는 녹이 슬게 되어 있고 아무리 멀쩡한 사람이라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쪼그려 앉아만 있다면 쉽게 보행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받아놓고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 조차 모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안에 주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주신 것을 방치하지 마십시오. 성령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주님과 하나될 때에 우리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요15:7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고 했습니다.(백지수표 같은 약속) 요14:12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시니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일도 하고 그보다 더 큰일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를 붙들어 인도하시고 능력을 부어주시는 사건을 오늘 내가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되면 기적은 우리에게 상식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님은 성도를 견인(堅忍)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견인이라고 하면 어떤 차(車)가 가다가 그만 고장을 일으켜 길 위에 멈추어 버려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할 때 견인차(牽引車)가 와서 고장난 차를 붙잡아 매달아 공장으로 끌어가는 것을 견인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고 잘못을 해서 내 영적인 모습이 고장난 차처럼 되어도 주님이 한번 구원하시기로 선택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천국으로 이끈다는 식의 말로 이해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주님은 고장난 채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고쳐서 천국까지 인도하십니다. 여기서 견인은 “견고하게 붙든다는 의미에서의 견인입니다. 위험한 산길을 어느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앞에 벼랑이 나타났습니다. 동시에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꼬옥 잡습니다. 앞에 짐승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더욱 손에 힘을 주며 붙잡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자신의 뒤편에 세웁니다. 위험의 요소가 사라질 때까지, 때로는 안 되겠다 싶으면 아예 아이를 자신의 팔에 끌어 앉습니다. 집에까지 그렇게 아이를 안고 갑니다. "견인"의 의미가 이런 것입니다. 아이가 위태할 때 아버지가 견고하게 붙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기가 아버지를 붙잡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아무리 보아도 그것은 아버지 쪽에서 더욱 세게 아이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드시니 안심입니다. 주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는 없습니다. 요10:28-29에 보면 “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때로 염려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과연 나는 주님 보시기에 진실한 성도인가? 하나님을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어느 정도 믿음이 성장하는 성도들이 갖는 질문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십자가의 복음을 너무 싸구려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믿으면 천국간다, 맞는 말입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바른 성경적인 답변은 바로 믿으면...제대로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입니다. 성경 속에서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조건부였습니다. 너희들이 ---하면 --해준다는 식입니다. 성경에는 “그리하면” 이라는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구절들에 밑줄을 죽죽 쳐 나가면서 성경을 읽는다면 주님의 놀랍고도 위대한 약속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약속을 변개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언약을 어기시거나 깨시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언약을 깨는 것입니다. 약속의 하나님께서 약속을 깨뜨린 경우는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민14장에 보면 그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고 통곡을 했습니다. 이때 주님은 그들을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약속은 믿지 않을 때 저절로 파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속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하는데,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약속은 저절로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사랑의 단계로 다같이 본문 21절을 보시겠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귀하게 여기며 제대로 믿는 자에게 허락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신랑신부가 결혼하는데 신부는 신랑보다 신랑이 가진 재산에 맘을 둔다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신랑이 있기에 낯선 가문에 들어가서 그 가족이 되어 일평생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어느 분이 기도하는데 주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나는 많이 외롭다, 왜요...주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천국만 사모하는 듯이 보인다. 천국은 사모해서 가야 할 곳이지만 세상 살 동안에는 나를 사랑하고 나와 이야기 하고 대화하자”. 여러분, 그분을 믿는 것은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을 이미 믿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을 믿어서 지금 주님께서 내 속에 계신다 하더라도 나는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단계까지 올라가야합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귀중히 여기는 이들이라고 했습니다. 24절에 보면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면 이젠 주님의 뜻을 추구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사tu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이리저리 치우칠 때가 많지만 우리에게 있는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주님을 사랑하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영원히 견인하실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님은 우리를 가르쳐주십니다. 요16:7-11에 보면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했습니다. 죄에 대하여라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죄라고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가장 큰 죄, 용서받지 못할 죄)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큰 죄인 것을 알게 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어, 나처럼만 살라고 해" 라고 선한 양심을 자랑해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죄인입니다. 성령님은 죄에 대해서 바르게 정의해주시고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느끼도록 하십니다.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 죄악의 길로부터 떠나게 하십니다. 죄인의 자리에 앉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심령에 기쁨이 사라집니다. 성령님이 속에서 근심합니다. 다윗은 구약시대에 성령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죄를 지었습니다.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던 사람인데 죄를 짓고 나니 상실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구원의 즐거움, 기쁨,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의무감으로, 마지못해, 억지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하였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내 속에서 근심하실 때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떠나면 행복합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십니다.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지금 잘 나가는 불신자들의 말로가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깨달음은 우리의 스승되신 성령의 가르침 없이 절대로 깨닫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세상어디에서 이런 가르침을 줄 수 있겠습니까? 고전2:9-11에 보면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 했고,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성경의 기록자이시기에 말씀의 뜻을 분명히 알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아이보리코스트에 사는 빠울리 족 그리스도인들은 보혜사 성령님을 "생각을 꽉 동여매시는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이 근심으로 혼란하고 생각이 무감각 해질 때 성령께서 이 흐트러진 생각을 꽉 동여매어 자기 통제 밑에 두신다는 의미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붙드시고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더하시고..순간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경우에 합당한 말까지도 가르쳐 주십니다.(마10:19-20) 장래 일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요16:13) 성령님은 우리의 스승이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승께 자꾸 물어야 합니다. “성령이 스승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게 하소서”라는 찬송 가사처럼 성령님이 우리의 스승되시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성령님께 물어보십시오 기도하면 가르쳐주십니다. 묻는 기도를 드려보십시오. 정원 목사님의 "주님을 경험하는 100가지 방법" 이라는 책에 보면 묻는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가 그분의 종인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주님께 요구하는 기도만을 드려서는 안되며 오히려 바른 기도는 주인의 분부를 받는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할 것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에 주님께 물으십시오. 오늘 주님께서 우리가 하시기를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주께 여쭈어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감동이 오는 것을 노트에 적으십시오. 그리고 그 명령과 순서를 따라 살 수 있도록 그것을 행할 힘을 달라고 주님께 요청하십시오.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 당신의 마음대로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주님께 물으십시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지금 그 시간에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는지 주께 여쭈어보십시오.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떠오르게 하시며 그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감동을 주셨다면...그를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물어보십시오. 또한 지금 그에게 전화를 해야하는 감동을 주셨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주님께 물어보십시오...나의 경우를 보면...내가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는 감동을 받고 전화를 했을때 대부분 상대방은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당신이 주님께 쓰여지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주님께 묻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드릴 때 당신은 평소에 수없이 스쳐지나 갔었던 많은 느낌과 감동들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며...당신이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묻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주님은 당신에게 아주 가까이 오실 것이며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실 것이며 당신은 그것이 그저 내 생각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그분의 역사를 일으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차츰 당신은 주님의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합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아 가는데 우리는 참 구주요 스승이신 주님을 닮아가게 성령께서 다듬어 가십니다. 고후3:18(표준새번역)에 보면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생각과 삶의 스타일이 예수 중심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내적인 성숙, 성품의 변화를 이끌어 내십니다. 이젠 내적인 성숙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은사, 중요합니다. 주님의 일에 활력을 불어 일으킵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세웁니다. 그런데 은사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에게 성령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진짜가 아니라 가짜성도입니다. 백화점의 마네킹을 보십시오. 그 크고 날씬한 몸매에 3000만 원짜리 밍크 코트를 걸치고 몇 백만 원짜리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아무리 멋있게 모션을 잡아도 마네킹은 불쌍합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나가도, 아무리 성공해도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은 사람은 영적인 마네킹입니다. 결국에는 망하고 맙니다. 롬8:9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성령님이 스승되셔서 늘 깨닫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하십시오. 묻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여러분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충만과 성령의 역사와 교통입니다. 성령님은 오늘 우리의 스승이 되셔서 우리를 진리를 가르치시고 성숙의 길로 인도하시며 견인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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