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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시작 (1)

번제를 삼을 지니

레 1: 3-9


들어가는 말

레위기에 있는 제사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므로 레위기의 지루함을 덜고 힘든 부분을 넘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의 제사의 종류는 5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번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번제의 재료


"소의 번제이면 흠없는 숫컷으로"(레 1:3)하고 "양이나 염소이면 이것도 흠없는 숫컷으로"(레 1:10)하고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레 1:14)라고 하였습니다. 번제 제물은 모두 생명을 가진 짐승입니다.


첫 번째, 제물은 순한 짐승이어야 합니다.


제물로 드리는 짐승은 사자나 호랑이나 늑대와 같은 맹수가 아니라 소나 양이나 비둘기와 같이 유순하고 또 사람에게 길이 잘 드는 동물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맹수는 제단까지 끌고 가는데도 힘들고 제물로 드리기 위해 죽이는 것도 매우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 길들여 진 짐승은 주인의 말에 순응을 잘합니다. 그래서 제단에 올려놓는데도 어렵지 않고 위험 부담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에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잘 순응하는 사람, 주인의 뜻에 따라 제단에 올려지는 것도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헌신은 강제가 아니라 기쁨의 순종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에게 바쳐져 쓰임이 되기 위하여서는 온유와 겸손으로 옷을 입고 순종으로 허리띠를 동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제물은 흠이 없는 짐승이어야 합니다.


제물이 불완전한 것은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신앙적 결함을 뜻합니다.


말라기 시절 믿음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물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흠이 있어서 상품 가치가 없는 것만 골라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지적한 것은 보면 매일 드리는 진설병은 "더러운 떡으로 드렸고"(말 1:7) 희생제물은 "눈멀고 병들고 저는 것"(말 1:8)으로 드렸습니다 그런 결함이 있는 것은 "사람들도 싫어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또 저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 "번폐스럽다"(말 1:13)고 생각하여 좋은 것으로 드리기를 권하면 코웃음을 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경종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종종 불완전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


예배시간에 늦는 것은 불완전한 시간의 제물입니다. 저녁예배시간에 불참하는 것도 불완전한 성수주일의 제물입니다. 모든 수입의 온전한 십일조가 아닐 때는 불완전한 제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마음이 정돈되지를 않고 어수선한 마음, 세상의 생각으로 조급한 마음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런 예배는 몸은 교회에 앉아 있으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불완전한 예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온전하게, 한시간을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일그러지지 않게 드려야 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신앙생활을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의 이스라엘처럼 매주일 교회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을 번폐스럽게 느껴서 주일을 잘 지켜야 한다고 하면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완전한 것을 드려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신앙행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 가난한 사람도 자기 생활 정도에 따라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는 생활이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드리려는 마음이 있고 생각만 있으면 능히 드릴 수 있는 값싼 제물입니다. 따라서 생활이 어렵다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소흘히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이면 누구나 이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지 물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소의 제물은 더 기뻐하시고 산비둘기의 새끼는 덜 기뻐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다만 생활의 형편에 따라 드리되 성도이면 누구나 다 드려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의 차이를 둔 것은 그 사람의 생활 정도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의 정도를 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약한 신자는 처음에는 비둘기와 같은 적은 것으로 드리지만 신앙이 점차 깊어짐에 따라 힘에 부치고 지나치는 경우라도 양이나 소로 드리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즉 좀더 크고 좀더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는 신앙적인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믿음이 약한 신자는 주일 낮 시간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장하면 주일 낮 시간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저녁 예배시간도, 새벽에도 나와 기도하고 성경도 열심히 상고해야 마음에 평안을 찾을 수 있고 봉사도 열심히 하여야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헌금이나 기타 헌금에서도 그와 같습니다. 주일헌금으로 만족하던 신자가 은혜가 깊어질수록 적은 액수로는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마치 비둘기의 제물을 드리던 사람이 양이나 송아지의 제물을 드리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우리가 아침마다 사용하는 치약을 제일 처음으로 개발한 "골게이드"는 처음에는 수입의 십일조를 드렸으나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가 고맙고 감사하여 십의 2조를 드렸고, 그 다음은 십의 3조를 드리다가 결국 십의 9조를 드리며 감사 생활을 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이 비둘기에서 소로 발전해 가는 과정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음이 성장하고 봉사가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납되는 예물


열납이란 기쁘게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드리는 제물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수 있습니까?


첫 번째는 제물로 바칠 짐승을 여호와 앞에서 잡아야 합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레 1:5).


"그가 단 북편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며"(레 1:11).


제물은 아무 곳에서나 잡는 것이 아닙니다.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한 절차에 따라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정한 것을 무시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제물이 못됩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아와 하나님에게 예배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지정한 날, 지정한 장소, 지정한 절차에 따라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그래서 멀리 외국에 나아가기 전에는, 지방에 여행을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주일에는 본교회로 돌아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혹은 친척집을 방문하면서 잠시 이웃 교회에서 예배시간만 때우고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온전한 예배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위적인 예배는 될지언정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는 못됩니다. 이것이 지정한 장소에서 짐승을 잡아야 하는 원리입니다.


두 번째, 제물은 바치는 자가 직접 죽여야 합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레 1:5).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레 1:11).


제물을 죽이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리로 할 수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리로 해주는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대학입학시험까지도 대리시험을 치러 사회에 슬픔을 더 해주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지만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은 대리가 안 통합니다. 자기가 직접 그 제물을 죽여야 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대리가 안 통하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 믿는 것은 대리가 안 됩니다. 아무리 가까운 부인이나 남편이라도 대리로 혹은 대표로 믿어서 모두가 구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내가 대신 믿어 남편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나 자식이 대리로 회개하여 나의 죄가 사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남에게 부탁만 하고 자신은 기도를 아니해도 되는 것으로 알면 이는 큰 착각입니다. 기도의 응원은 필요하지만 내가 입을 벌려 기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대리 기도만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의 상급이나 이 세상의 축복도 내가 신앙 생활을 잘하여야 내가 받는 것입니다. 이웃이 신앙생활을 잘 하였다고 나에게 천국의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돈도 권력도 통하지 아니 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 앞입니다. 어느 누구도 대리로 할 수 없는 곳이 하나님 앞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만나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도 직접 받으시고 축복도 직접 받으시기 바랍니다.


금년에는 매월 첫 주일 저녁에 하룻밤 부흥회로 모임이고 그래서 은혜 받는 기회를 넓히려고 합니다. 이것도 내가 참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제물을 죽이기 전에 먼저 짐승 머리에 안수를 하여야 합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레 1:4).


아사셀 양을 보낼 때의 규례도 안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짐승에게 안수는 것은 단순한 의식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안수의 첫 번째 의미는 이 송아지가 나의 죄를 짊어졌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죄를 전가한 후 제물을 잡고 하나님에게 드릴 때 그 사람의 죄가 사해지며 그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안수의 두 번째 의미는 그 짐승과 나와의 하나됨입니다. 그래서 제물이 되는 짐승이 죽는 것은 바로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제물과 함께 죽고, 함께 하나님께 바쳐지고, 불에서 함께 태워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단 위에서 죽고 태워지는 양은 양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내가 죽고 내가 불에 타야 진정한 제사의 의미를 갖게 되고, 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짐승을 죽인 후에 피는 단 주변에 뿌려 집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레 1:5).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레 1:11).


그러면 왜 피를 뿌리는 것입니까?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이때 뿌려지는 피는 지금 그 짐승의 머리에 안수한 그 사람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뿌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제물이 온전히 바쳐질려면 죄 사함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죄로 더러워진 제물은 바쳐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온전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십니까? 헌신하기를 원하십니까가? 하나님께 쓰임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사죄의 은혜와 구속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러기 위하여 예수의 보혈을 믿으십시오. 피 뿌림을 믿으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열납 하실 것입니다.


네 번째, 고기는 제단 위에 올려 전부 태워야 합니다. (레 1:7-9, 1:12-13). 그러면 이렇게 제물을 모두 태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태우는 의미는 내 소유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시인하고 고백하며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임을 시인하는 신앙의 고백이며 표현입니다.


둘째, 태우는 의미는 소멸의 개념이 아니라 새것으로 재창조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에 대하여는 잠시 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번제의 영적 의미


번제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오늘의 성도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까?


번제란 히브리어의 뜻은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제물이 완전히 연소되어 올라가도록 하는 제사란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완전히 바쳐지는 완전한 헌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제물이 완전히 태워지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 재창조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처음에는 짐승입니다. 그러나 불에 올려지고 태워 질 때 연기가 되고 불꽃이 됩니다. 그 다음은 냄새가 됩니다. 약간 비약적인 표현이 될는지 모르겠으나 눈에 보이는 물질 혹은 물체가 보이지 영적인 것으로 변화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가는 말


우리도 하나님에게 바쳐지면 육의 사람이 내 속에서 소멸되고 영적인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짐승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제물의 죽음은 나의 옛사람의 죽음입니다. 죄와 정욕의 사람의 죽음입니다. 만족을 모르며 감사를 모르며 사는 완악하고 고집스런 나의 죽음입니다. 소극적이며 부정적이며 비협조적인 나의 시각의 죽음입니다. 나의 옛 사람이 죽지 않으면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했습니까? 예수님은 왜 십자가 지는 것을 친히 보여 주었습니까? 예수님과 같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서 입니다. 오늘 우리는 내 것 하나 하나를 단위에 올려놓고 태우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새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다. 예수의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



레위기의 5대제사와 영적의미


◐ 레위기의 5대 제사 ◑


레위기는 여호와께 드려야 할 5 대 제사의 규례로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러한 레위기의 시작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왜냐하면 건축된 성막의(출40:17) 주된 목적이 제사였고, 따라서 성막이 완성된 지금 그곳에서 드려질 제사의 규례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논리요 순서이기 때문이다.

제사의 종류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5 대 제사로 분류하기도 하고 6 대 제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제사장의 위임식 때 거행하는 위임제를 여기에 포함시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 차이인데, 여기서는 5 대 제사만을 거론할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제사장의 위임식 때 행해진 위임제는 모든 이스라엘에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위임에만 관련된 것으로 보고, 모든 이스라엘이 행해야 할 나머지 5 대 제사, 즉 '번제와 소제', '화목제와 속죄제' 그리고 '속건제'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1. 번제(Burnt Offering)


1) 어의

번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올라'( )는 '올라가다', '실어 올리다', '높이다'라는 뜻의 '아라'( )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위로 드려지는 제사', '위로 올라가는 제사'를 뜻한다. 이러한 단어의 의미는 불에 태워진 희생 제물의 향기가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2) 제물의 종류

번제에 사용된 제물은 수송아지, 수양, 수염소, 혹은 비둘기인데, 이 모든 제물은 반드시 흠없고 일년 된 수컷임을 그 특징으로 하였으나 비둘기에 대해서만은 수컷이나 암컷 중 어느 것을 드리라는 특별한 지시가 없다.


3) 번제의 방법

① 헌제자가 제물이 될 짐승을 끌고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나아온다.

② 헌제자의 손을 제물의 머리 위에 얹고 안수한다.

③ 헌제자가 제물을 잡아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

에 뿌린다.

④ 헌제자가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다.

⑤ 제사장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 그리고 물로 씻은 내장과 정강이를 단 위

에서 불 사른다.

이러한 방법은 양과 염소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비둘기의 경우는 달라서 제사장 혼자서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며 피는 단 곁에 흘리고 멱통과 창자 등은 재 버리는 곳에 버리고 몸은 쪼개어 단 위에서 불살랐다.


4) 번제의 목적

번제의 목적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그 첫번째는 '속죄를 위한 것'(레1:4,16:24)인데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속죄제와 속건제가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지는 제사라는 점을 들어 이 목적을 등한시 여기거나 그냥 지나쳐 버리려 하지만 번제의 주된 목적은 성경이 밝히 말해 주고 있는 대로 '속죄를 위한 것'이다. 번제의 두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헌신에 대한 표현'이다. 이러한 목적은 창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순종에서 잘 나타나는데 그는 자신의 순종과 믿음의 증명을 위해 자신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려 하였고, 그러한 믿음과 순종을 인정하신 여호와께서는 그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으신 양을 제물로 삼아 번제를 드리게 하심으로 아브라함의 헌신과 믿음을 인정하셨다.


5) 번제의 영적 의미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원의 희생을 상징'함과 동시에 그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번제의 영적 의미는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도들의 헌신'이라고 할 수 있다.



2. 소제(Meat Offering)


1) 어의

소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민하'( )는 '분배하다', '수여하다'라는 의미의 어근 '마나'( )에서 유래한 것으로 '헌물', '조공', '희생 제물'을 뜻하는데 특별히 '피 없는 곡물 제사'에 사용되어 말 그대로 '소제', 또는 '피 없는 곡물 제사'를 뜻한다.


2) 제물의 종류

소제에 드려진 제물의 종류는 모두 네 가지였다. 그 첫째는 '고운 가루'로서 여기에는 '기름'과 '유향'이 첨가된다. 둘째는 누룩을 넣지 않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으로서 무교병을 만드는 방법은 '화덕에 구운 것'(레2:4)과 '번철에 부친 것'(레2:5), 그리고 '솥에 삶은 것'(레2:7)의 세 가지였다. 소제물의 세번째는 '처음 익은 곡식'이었으며, 네번째는 '첫이삭'이었는데 특별히 첫이삭을 소제물로 드릴 때는 볶아 찧은 것에다 기름과 유향을 드려야 했다.


3) 소제의 방법

소제를 드리는 방법은 제물을 제단으로 가져오기 전에 집에서 제물을 준비하는 것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데 그것은 제물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소제를 드리는 방법에 속하기 때문이다.


첫째, 고운 가루의 소제물일 경우에는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놓은 후 제사장에게로 가져오는데 제사장은 고운 가루 한 줌과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제단 위에 불사른 후 나머지는 자신의 음식으로 취한다.


둘째는, 무교병을 소제물로 삼을 경우인데 이 때는 화덕에 구운 것과 솥에 삶은 것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들고, 번철에 구울 경우에는 고운 가루를 누룩 없이 기름과 섞어 구운 후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붓는다. 이러한 무교병의 소제물 역시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면 제사장은 그것 중 기념할 만큼만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고 나머지는 자신의 음식으로 취하였다.


셋째는, 첫이삭을 드릴 경우인데 이 때는 반드시 그 곡식을 볶아야 하며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더한 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야 하며 제사장은 그중 얼마와 모든 유향을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드린 후 나머지는 자신의 음식으로 취하였다(이때의 나머지에 대해 성경의 특별한 언급이 없지만 소제물이 제사장의 음식으로 주어졌다는 일반적인 규례를 따를 때 첫이삭의 소제물 역시 제사장의 음식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이러한 모든 소제물에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과 꿀을 넣지 말고 반드시 소금을 치라는 것이었다.(레2:11,13)


4) 소제의 목적

소제의 목적 역시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우리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물질을 공급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며 경배 돌리기 위함이며,


둘째는 자신의 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음식을 제공하여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5) 소제의 영적 의미

소제의 영적 의미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적 양식의 공급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 생명의 떡이 됨을 상징하는 동시에(요6:32-35), 이러한 영적 양식과 일용할 육적 양식까지도 공급받는 성도들이 드려야 할 감사의 의무를 상징한다. 한편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는 명령은 '영원한 계약'을 상징하는 '소금'(민18:19,대하13:5)을 통해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과의 영원한 계약 관계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제사 드리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과 제사 드리는 자는 그 계약법을 지켜야 할 영원한 의무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과의 영원한 계약 관계에 있는 자는 죄악과 세상의 유혹에서 떠나야 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죄악을 상징하는 '누룩'과 달콤한 세상의 유혹을 상징하는 '꿀'을 모든 소제물에서 제하라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으로 주어졌다.



3. 화목제(Peace Offering)


1)어의

화목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제바흐 쉐라밈'( )은 '동물을 살육하다', '죽이다', '제사 드리다'라는 뜻의 '자바흐'( )에서 파생된 '도륙', '희생물'을 뜻하는 '제바흐' )와 '완전한', '정다운', '공평한', '평화로운'을 뜻하는 '솨렘' )에서 파생된 '쉐라밈'( )의 합성어로서 그 의미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 또는 '평화로운 관계를 얻고자 하는 희생 제물'이라는 의미이다.


2) 제물의 종류

⑴ 소와 염소 : 흠 없는 것으로서 암컷,수컷 구별 없이 어느 것이든 가능하다. 그러나 전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 그리고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⑵ 양 : 소와 마찬가지로 흠 없는 것으로 하되 암,수 어느 것이든 가능하였고, 어린 양을 드릴 수도 있었다. 양의 경우 역시 양의 기름만을 드리되 미려골(등심뼈 또는 척추)에서 베어 낸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것과 모든 기름진 두 콩팥과 간에 덮인 기름과 꺼풀만을 콩팥과 함께 드릴 수 있었다.


3) 화목제의 방법

화목제를 드리는 방법은 번제의 방법과 거의 유사한데 그 순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헌제자가 제물이 될 짐승을 끌고 여호와 앞으로 나아온다.

② 헌제자의 손을 제물의 머리 위에 얹고 안수한다.

③ 헌제자가 제물을 잡아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린다.

④ 헌제자가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그 속의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것을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것들을 받아 제단에서 불사른다.

⑤ 제물의 가슴은 '요제'로 제물의 우편 뒷다리는'거제'로 흔들어 제사장의 음식으로주어지는데 제사장과 가족들은 그것을 그날에 다 먹어야 하며 남은 것은 불에 태워야 했다.


4) 화목제의 특색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는 달리 두 가지의 특색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의무적인 제사가 아닌 '선택적인 제사'로서 '자원함으로나'(레7:16), '서원함으로'(레7:16,삼상1;21이하), 그리고 '감사함으로'(레7:15)드리는 제사였으며, 둘째로, 화목 제물의 고기를 헌제자도 먹을 수 있는 일종의 축제 형식의 제사였다는 점이다(레7:15-21)


5) 화목제의 영적 의미

화목제의 영적 의미는 화목제의 성격이 드러내는 바 그대로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케 하는 '화목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과(롬3:25,엡2:13,골1:20),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는 성도들의 친교인 '성만찬에 대한 예표'이다(고전10:16)



4. 속죄제(Sin Offering)


1) 어의

속죄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하타트'( )는 '과녁에서 벗어나다', '죄를 짓다', '속죄물을 드리다', '속죄하다'를 뜻하는 '하타'( )에서 파생된 것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난 죄로부터 청결과 속죄함을 얻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를 뜻한다.


2) 제물의 종류

속죄제의 제물은 범죄자의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달랐다.

① 제사장 -- 흠 없는 수송아지를 드림(레4:3)

② 온 회중 -- 수송아지를 드림(레4:13)

③ 족장 -- 흠 없는 수염소를 드림(레4:23)

④ 평민 -- 흠 없는 암양이나 암염소를 드림(레4:28)

이 외에도 가난한 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제물로 드릴 수 있었으며(레5:7), 이보다 더 가난한 자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레5:11)


3) 속죄제의 방법

① 헌제자가 제물이 될 짐승을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가져온다.

② 헌제자의 손을 제물의 머리 위에 얹고 안수한다.

③ 헌제자가 제물을 잡아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성소 앞에 일곱 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바른 후 회막 앞과 번제단 밑에 전부 쏟는다.

④ 희생 제물의 모든 기름과 콩팥을 번제단 위에서 불사른 후 그 나머지 부분은 진 바깥 재 버리는 정결한 곳에서 나무 위에 놓고 불사른다. 그러나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한 속죄제는 진 밖에서 불사르지 않고 다리와 고기를 회막 뜰에서 구워 먹도록 하였다(레6:24-27)


4) 속죄제와 속건제의 차이

속죄제의 목적은 '범죄에 대한 용서'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은 속건제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둘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는, 범죄의 성격적 차이로서 속죄제가 하나님께 범죄한 자, 즉 '율법을 범한 죄'를 위한 제사였던 반면에, 속건제는 인간에게 범죄한 죄, 즉 '도덕적인 범죄의 대속을 위한' 제사였다.

둘째는, 속죄제는 속건제와는 달리 '범죄한 일을 배상할 수 없는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제사였던 반면, 속건제는 '배상이 가능한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제사였다는 점이다.


5) 속죄제의 영적 의미

속죄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실로 속죄 희생의 어린 양이 되셔서(벧전1:19) 모든 인류의 대속물이 되셨는데, 그의 죽음의 장소는 속죄제 희생 제물이 진 바깥 정결한 곳에서 불살라진 것처럼 예루살렘 성 바깥의 골고다 산상의 고통스런 십자가였다.



5. 속건제(Tresspass Offering)


1) 어의

속건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솸'( )은 '죄'(Sin)가 아닌 '범죄'(Guilt),'범법'(Tresspass), '손해'(Damage)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적인 죄', 또는 '도덕적인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를 뜻한다.


2) 속건제의 제물

속건제의 제물은 범죄의 형태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러한 제물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너무나도 복잡하고 광범위하다. 그러므로 각각의 범죄에 대한 속건 제물에 대해서는 레5:14, 6:7, 7:1-10, 14:1, 15:2을 참고하도록 하되 이러한 여러 가지 제물을 요약하면 '흠 없는 일년된 수양', '범죄물과 그 범죄물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본인에게 주는 일',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둘'이나,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삼'과 '기름 한 록' 등이다.


3) 속건제의 영적 의미

속건제는 성도가 신앙생활 가운데서 범하기 쉬운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제사로서 그러한 범죄는 진리를 배반하거나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성령의 사역을 거스리는 죄가 아닌 '실수와 실족의 범죄'를 뜻한다.

그러므로 속건제는 구원에 관련된 원죄에 대한 회개나 기도가 아닌 날마다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짓게 되는 육적인 죄, 즉 '자범죄에 대한 회개와 기도에 대한 상징'이다.



요제(Wave Offering, ;'테누파')


농산물을 제물로 드릴 때 사용하는 제사 방법이다. 히브리어 '테누파'는 "앞뒤로 움직이다", "흔들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노프'( )의 힢일형에서 유래된 말이다. 탈굼에서는 이 단어를 "일어서다", "들어 올리다"는 동작을 나타내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마쏘라 사본에서는 이 동사의 힢일형이 "들어 올리다"는 의미와(사10:15) "흔들다"는 의미로(사19:16) 모두 사용되었다.

제물을 드리는 방법에는 화제, 거제, 요제, 전제가 있었는데, 요제는 그 중 하나였다(제사의 종류는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가 있었다).

요제로 드려진 제물들은 다음과 같다. 곧 화목 제물로 드려진 동물의 가슴 부분(레7:30,9:21,10:14-15,민6:20,18:18), 성막 장식용으로 바쳐진 보석류(출35:22,38:24), 위임식 수양의 가슴과 넓적다리 부분(29:22-26,레8:25-29), 칠칠절에 드린 누룩 넣은 빵과 곡식의 첫 열매와 어린 양 두마리(23:11-14,17,20), 문둥병의 정결예식에 사용된 어린 수양과 감람유(14:12,24)등이다.

여러 종류의 제물들을 한꺼번에 요제로 드린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출29:22-24,레8:25-27). 또한 요제는 '순결을 판단하기 위한 소제' 때에도 사용되었다(민5:25).

민수기 8:11,15,21절에서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요제'로 레위인을 여호와께 드렸다고 나타나 있다. 요제는 하나의 의식 행위였으며, 요제로 인하여 제물들이 여호와께 헌납되었다. 그러나 요제의 정확한 의미와 성격은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않다. 아마도 요제를 드릴 때는, 먼저 제사장이 봉헌자의 손바닥 위에 요제물을 얹어 놓은 다시 봉헌자의 손에서 제사장의 손으로 옮겨 놓고 제사장이 앞뒤로 흔드는 절기를 따랐던 것 같다(민6:19-20). 제사장이 자신의 예물을 요제로 드릴 때는 요제물을 처음부터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흔들었을 것이다.

요제물을 앞으로 내미는 행동은 여호와께서 제물을 다시 제사장에게 주는 것을 의미한다.


거제(擧祭,Offering)


제물을 들어서 제사 드림. 제물을 번제단 위에 높이 들어올렸다가 아래에 내려놓는 제사로, 하나님께 바쳤다가 제사장이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을 의미하는 데서 생겨났다(레7:14,민15:19,신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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