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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눅 16:9


친구란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는 사람, 또는 벗을 말합니다. 친구! 하면 우리는 언제나 정겹고, 옛날 고향에서 함께 철없이 뛰놀던 친구들이나, 학창생활을 함께 보냈던 동창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제 세월이 지나고 나이도 이만큼 들고 보니 그렇게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모두 ‘그렇고 그렇다’ 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여간해서 좋은 친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얼핏 들으면 잘 이해되지 않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한절을 택했지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눅16장 1-13절까지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16:1-13까지 이 청지기에 대한 비유를 아주 재미있게 말씀해주고 있는데, 먼저 청지기란 주인집에 얹혀살면서 집안일과 함께 재산을 관리해주는 사람으로 1-8절까지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마치 자기 것인 양 마구 허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소문이 주인의 귀에 들렸고, 이를 알게 된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 책임을 추궁하며 그동안의 보던 일을 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청지기를 해고하겠다는 것이 주인의 생각입니다.


이제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 청지기로서는 앞으로 살아나갈 길이 막막하고 걱정이요, 여간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3절을 보니 그는 농사지을 힘도 없고, 그렇다고 빌어먹자니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으로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궁리 끝에 생각한 일이 4절에서 7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낱낱이 불러 그들이 진 빚의 일부를 탕감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렇게 하면 그가 설사 주인에게서 쫓겨난다 하더라도 빚의 일부를 탕감을 받은 자들이 자신이 쫓겨났을 때 자신을 선대하여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한사람씩 불러 기름 100말을 빚진 자에게는 그 증서에 오십으로 고쳐주고 밀 100석을 빚진 자에게는 80으로 고쳐주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남의 채무 문서를 위조하고 남의 재산을 횡령하는 아주 파렴치한 사기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8절을 보니 이 주인은 불의하고 파렴치한 이 청지기를 칭찬하였던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하였음으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지혜로움이라.”


우리 모두 알듯이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이 말씀에서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여기 청지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청지기로 그 하나님 앞에 언젠가 셈을 하여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도 그 누구도 여기서 예외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청지기가 되어 얼마나 일을 잘 했는지 보실 것이며, 나는 이 하나님 앞에서 셈을 하여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 할 것은, 주인이 칭찬한 것이 이 불의한 청지기가 아니라, 옳지 못한 청지기의 지혜를 칭찬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참 지혜롭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어야하며 또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너무 잘 압니다. 그래?16:8 하반부에 보면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 하셨는데, 이 말을 보면 이 세대의 아들들이란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그들의 자기 시대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 빛의 아들들, 즉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지금 이 세대야 말로 바로 그들의 시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눅 16:1을 보면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라고 말씀을 시작하신 것을 보면 이 비유는 당시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그만큼 중요한 말씀이며 또 지금 주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본문은 결코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것도 아니며, 더구나 우리들에게 이 청지기처럼 살라고 하신 말씀도 아닙니다. 다만 이 청지기처럼 장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 하신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불의의 재물’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재물이란 쉽게 말하면 돈입니다. 저도 남들처럼 돈을 좋아하며 귀하게 생각하고 필요로 합니다. 이런 재물은 인격이 없으므로 그 자체가 선하다든지 또는 악한 것이 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재물을 맘몬이라 이라 하여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재물을 사랑하거나 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재물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귀한 것입니다. 재물은 이를 소유한 사람에게 그가 소유한 만큼 그들의 삶을 윤택하고 편리하며 여유롭게 합니다. 또 재력이라는 힘도 주고 인생을 즐길 수 있게 하기도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재물을 얻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며 속이고 빼앗고 죄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불의의 재물’이라 할 때 우리는 보통 정당하게 벌지 않는 돈이나, 옳지 않게 사용되는 재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시는 ‘불의의 재물’ 이란 하늘에 속한 것과 대조하여 ‘세상에 속한 재물’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우리가 본문에서 생각할 것이 ‘친구’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친구는 누구이겠습니까?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여기서 말씀하는 ‘친구’는 바로 예수님이심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의 재물로 나를 친구로 사귀라 그러면 너희가 없어질 때에 내가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여기서 친구를 예수님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실 이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생각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데 이들은 바로 우리 가운데 가장 작은 자요, 병든 자요, 약한 자, 가난한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님이 영광의 왕으로 이 땅에 다시 오셔 세상을 심판하실 때 모든 사람을 양과 염소로 구별하시고 이르시기를,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고, 너희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 (마25:40-45) 말씀하셨는데, 여기 “내 형제 중에” 라는 말씀은 특히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10)하였습니다.


이제 눅16장 10절 이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보면, 지극히 작은 것과 큰 것, 그리고 불의한 재물과 참된 것, 또 남의 것과 너의 것, 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것과 불의의 재물, 그리고 남의 것은 재물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말합니다.


이에 반하여 큰 것, 참된 것, 그리고 너의 것은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과 우리가 장차 소유할 하늘의 것들, 하나님의 상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취할 수 있는 재물이나 명예 같은 것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나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과 비교할 때 얼마나 작은 것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사40:6,벧전1:24-25)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다 남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성경도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 6:7) 라고 말씀하고 있질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나 재물을 “지극히 작은 것이라 하셨으며, 불의한 재물이요, 남의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이 내게 맡긴 재물은 내 것이 아닙니다.

재물뿐이 아닙니다. 명예도, 권력도, 심지어 시간이나 생명까지도 내 것이 없습니다. 이 ‘남의 것’을 ‘내 것’이나 또는 ‘우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나 자신이나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돈이든 무엇이든 아낌없이 씁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이웃에 대하여는 너무 인색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결코 친구를 사귈 수 없으며, 하나님 앞에 불의한 청지기일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선한 청지기의 자세가 아닙니다.


내게 힘이 있고 재물이 있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게 주고 베풀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면 ‘내 것’은 없습니까?

‘내 것’이 있다면 무엇이 ‘내 것’이며, 어떤 것이 ‘내 것’이 되겠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내 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내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 둔 것만이 내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마6:19-20, 눅11:33-34)하셨고,

잠언에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19:17)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 하늘에 쌓아둔 것만이 내 것이며, 가난한 자에게 베푼 선행이 하나님께 꾸어드린 것이요, 내가 받을 수 있는 내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하였고,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줌 이러라.”(행 4:32-35)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로선 받아드리기 매우 어려운 일이나,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요, 재물에 대한 신앙인의 근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도 이 불의한 청지기에게 지혜를 배우고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기꺼이 헌금을 하며, 교회는 어려운 형제나 이웃을 위하여 구제와 긍휼을 베풀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내게 맡기고 허락하신 일이나 사업에 최선을 다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10절 이하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하신 말씀은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직업이나 직장을 천직으로 알아 열심히 일하고, 또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이며,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는 일이요, 남의 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참된 것을 우리에게 맡기실 것이며, 하늘에 있는 우리의 것이 많고 또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요,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10-13절)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입니다.(마 22:37-40)


모든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치고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과 복음서는 물론 사도행전, 바울서신, 야고보서, 요한1,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경은 우리가 이렇게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자가 바로 지혜로운 청지기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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