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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제도의 원리

2:18-25


들어가는 말


우리의 생존과 신앙, 행복과 종족보존, 성공과 발전 등 인생의 전반에 걸쳐 부부관계는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제도의 원리를 무시한채 방자하게 가정을 이루어 비극을 초래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행복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서 최초에 창조하신 부부제도의 원리가 무엇인가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론>


1. 부부가 되는 것은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게서는 자기 형상대로 지음받은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어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음을 아신 하나님은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그를 위해 돕는 베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녀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면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2: 24)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인용하시어 신약성도들의 가정 원리로 삼으셨으며(마 9: 5), 바울사도도 부부일신의 원리를 천명했습니다(엡5: 31).

신학자 오빙크(Obbink)가 "본래 사람은 하나뿐이었는데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두 쪽으로 갈라 나누어 각각 남자와 여자가 되게 했다"고 한 것은 비성경적이지만 부부일신을 강조한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을 이루기에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점에 비춰 볼 때 우리나라의 결혼관은 몇가지 그릇된 점이 있습니다.


1)규례에 의한 결혼이란 점입니다.


즉 사람이 적령기에 이르면 의당히 결혼하는 법이므로 싫든 좋든 결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엔 본인들의 승락없이도 부모들이 마음대로 결정하고는 무조건 순종하게 할 때가 있었습니다.


2)집안을 위한 결혼이란 점입니다.


결혼이란 영어로 Wed로써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백년가약을 맺는 의미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을 "장가간다""시집간다"는 말로 표현하여 전체 가족의 연합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시집간다는 말은 시가에 살러 간다는 말이니 시부모와 시누이, 시동생들 때문에 눈치를 보아야했고 숱한 눈물을 흘려야했습니다.

이는 결혼의 의미를 집안에 우선적으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혼하면 시가집 부모에게

효성하고 형제들간에 우애있게 해야 합니다만, 결혼의 목적은 그 이전에 우선 신랑과 신부자신들의 한 몸 됨이란 것입니다.


3)자녀를 얻기 위해 결혼하는 예가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하면 자식이 생기는 것이 자연법칙입니다만 여성들이 자식을 낳아 주려고 시집가는 것이라면 그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결혼은 결코 자녀를 낳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랑의 연합이란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보양해야 합니다.(엡 5: 29)

그러므로 기혼자들은 "부부는 한 몸이라"는 공동생명체요 동일한 운명체로 알고 살아야 하겠고, 미혼자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자기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니만큼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2. 부부는 각기 직분은 다르나 인격은 동등하다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보양할 책임이 있고 아내는 남편을 받들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을 파괴하거나 이행치 않을 때는 가정에 고통이 오는 법입니다. 요즘 미국 사회에서 부인들이 남편을 받들고 순종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합니다. 이유는 과거 여성주권운동의 결과 오히려 가정마다 불화하고 쓸쓸하게 되니 그들은 남편에게 순종하는데 가정의 행복이 있음을 뒤늦게야 자각한 것입니다(벧전 3: 1- 6).

아내가 남편을 받드는 것은 결코 비굴한 일이 아니라 여성의 본분입니다.

이는 남성들이 직장의 상관을 받드는 일이나 상인이 단골손님을 잘 섬기는 것이 비굴한 일이 아니라 마땅한 것과도 꼭 같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받들고 섬기는 것이 못나서가 아니라 부부형성의 원리이기 때문이요, 그렇게 할 때에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우리들도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딸이 되자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벧전 3: 6). 이러한 현숙한 여인, 부지런한 여인, 덕행있는 여인은 그 남편에게 진주보다 더 값진 보배입니다(잠 31: 10- 31).

그러나 남편을 결멸하고 다툼을 일으키는 여인은 남편을 불행하게 하며 자신도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 21: 9)고 했습니다.

동시에 남편들도 아내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남편은 호주로서 통솔력있게 다스리며 가족을 부양하고 남편의 대의명분을 지켜야 합니다. 아내를 지을 때 남자의 갈빗대를 뽑아 지었다함은 아내는 남편의 품에 있다는 뜻이니 남편은 그 아내를 보호하고 사랑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으로서 이런 이무를 태만히 하거나 방탕하는 것도 하나님의 원리에 어긋난 일입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부부상호간의 직무에 충실하라는것입니다.

동양윤리에도 부화부순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남녀는 그 직무는 달라도 인격은 동등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부제도의 원리를 따라 자기 직분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부부는 피차 이해와 사랑으로 살아야 함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아담의 갈빗대로 지음받은 하와를 데려오니 아담은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발이로다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23)고 하엿습니다. 이것은 부부가 피차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창조의 원리를 보여 줍니다.

에베소서 5: 22이하에, 주님은 신랑으로, 교회는 신부로 비유했습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은 신부 같은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시어 죽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사랑하고, 제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가부장적 사회로서 여성은 남편들에게 너무나 많은 학대를 받아왔으며, 남편은 부부의 도의를 저버려도 괜찮은 양 여겼고, 부인은 조금만 잘못하면 칠거지악에 얽매여 추방당했습니다.

가정의 이런 슬픈 사연을 그린 것이 춘향전과 사씨남정기같은 소설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원리에서 이탈하기 때문에 부부의 도의는 깨어져 가고 수많은 가정들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사랑을 많이 노래하던 시대도 없었읍니다만 오늘날 순결을 도외시한 타락한 쾌락적, 동물적 사랑은 도리어 참사랑을 파괴하고 불행만 야기할 뿐입니다. 우리는 소돔고모라적 역행적 사랑이 아니라,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같은 순결한 사랑, 성경적 사랑의 원리에 충실한 사랑을 피차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나가는 말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가정의 남편과 아내들은 성경적 부부의 원리를 이해하여 이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꽃이 피는 가정, 부부가 함께 천국에 들어 가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청년 여러분도 이 원리를 명심하여 하나님앞에 합당한 결혼을 하여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앞날에 이 교회와 나라의 훌륭한 역군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칭찬의 위력

저자 소개 제리 D. 트웬티어 - 저자는 사립, 공립하교 일반 직장 등에서 환경 훈련 경험을 20년이나 하였다. 또한 작가, 상담원,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텍사스 공과대학에서 교육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40권 이상의 저 있으며 현재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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