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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크운동의 신학적 배경 - 윤사무엘

Nyskc Conference' 2006 (Atlanta & Toronto)


강의안 “Nyskc Movement 신학적 배경”

윤사무엘 목사 (부학회장) Learned Society


1. 시작하는 말


Nyskc Movement는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의 바른 예배를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그래서 나이스크의 신학은 바로 회복의 신학이다. 말씀의 회복, 기도의 회복, 찬양의 회복, 전도의 회복, 특히

경건의 회복을 강조한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 4:7) 경건훈련의 구체적인 실천이 바로 나이스크 운동의 강령이다, 매일새벽기도 참석 실천, 매일 영혼의 양식인 성경애독(읽고 쓰고 묵상하고 외우고 실

천) 강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심정으로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 실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어 오직 예배, 전도, 찬양, 봉사에만 전심을 다함, 그리고 온전한 십일조 드리며,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생활화하자

는 운동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자. 영어의 첫 자를 따서 N.Y.S.K.C. (강령/신조) 라고 부른다.


(1) 새로운 생활 (New Life) - 영혼의 호흡인 새벽기도/ 회복의 시간 (first hour with God)

(2) 하늘의 만나 (Yielding for Manna) - 영혼의 양식인 성경애독/ 회복의 양식 (nurture)

(3) 구령생활 (Salvation for one by one) - 성도의 열매인 개인전도/ 회복의 방법(evangelism)

(4) 주일성수 (Keeping for Lord's Day) - 성령의 교통이며 성수주일/ 회복의 날 (shalom)

(5) 온전한 헌금생활 (Complete Offering) - 축복의 도리요 헌신인 일조전납/회복의 모습 (devotion)


Nyskc-ism은 개혁적 Reformation(reform oneself) 회복 즉 내적인(Recovery) 것과 외적인(Restoration) 총체적인 회복의 사상을 뜻한다. "예배가 없는 곳에서 예배가 있는 곳으로"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

이 있는 곳으로" ”실천이 없는 곳에 예배의 생활화로“ 변화시키고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선교교육 사역(Mission Education Ministration)의 실천적 사역을 이루기 위한 구령사업으로 Nyskc Conference를 열

고 지상에서의 예배회복을 위한 훈련을 통하여 Leader 즉 주님의 복음의 군사와 제자들로 훈련되어 마지막 때의 성령의 사람이 되어 예배회복운동(Nyskc Movement)으로 무너진 교회를 일으키고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 끝까지 복음을 통한 예배회복을 전파하려는 것이다. 예배회복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살리며, 나라와 가정을 회복하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운동(Movement)이다.

즉 기도와 말씀 그리고 전도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과 예물의 드림을 신앙의 신조로 삼고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자는 신앙의 사상이자(Nyskcism) 강령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회복운동(Nyskc Movement)을 뜻한

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본질이듯이 교회 중심적 신앙의 자세는 예배에 달려 있으며 예배가 살면 교회가 살아난다.

예배가 살면 사람이 고쳐질 것이며 세상은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예배가 살면 복음이 전파되며 의식이 바뀌고 행동이 바뀔 것이다.

예배가 살면 교회가 살고, 나라와 가정이 산다는 구호아래 나이스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 성서적 기초


바른 예배회복 사상을 성서에서 찾아보자. 우선 예배란 히브리어로 ‘Avoda'란 말인데 이는 ’섬기다‘ (to serve)란 동사에서 기원한다. ’종이 그 주인을 위하여 자기의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봉사하고 위하는 태도‘를 말한다. 헬라어의 proskuneo 라는 말도 ‘엎드려 경배를 드리다’ (to fall down and worship; to kneel, bow down)는 뜻이다.영어로 번역된 worship 이란 최상의 가치(worthiest)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to ascribe the worthiest to God)으로 이해된다. 독일어로 역된 Kult 는 라틴어 kultus에서 나온 말로 ’기다린다‘ 즉 종이 땅에 엎드려 무슨 심부름을 시키든지 응할 수 있도록 대령하고 있는 자세를 말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예배란 인간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최대의 봉사를 하는 자세,

명령이 하달되면 실행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경우, 예배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더욱 깊어지며, 헌신과 봉사를 다짐하게 되었다. 예배를 통해 소명을 받기도 하며, 회개와 죄사함이 이루어졌다. 말

씀이 선포되고 결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도 했다. 신본주의로 구성된 이스라엘의 언약 공동체(covenant community)에서 예배를 통하여 언약이 ‘현재 우리에게’ 체결되어지는 것이다 .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신 5:2-3)


이를 예배에 적응하면 예배를 과거의 역사를 현재로 재현(再現, re-presentation)되는 하나님의 드라마(Divine Drama)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예배는 가족단위, 지파단위, 민족단위로 모여서 드렸다. 초대교회도 함께 정기적으로 모여 예배를 드렸다. 공적인 예배(corporate worship)를 통해 출애굽이 사건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기독교의 예배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사건을 현재 나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참여하여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갈 것을 결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건이 예배의 중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예배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예배가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노래와 찬미와 고백과 기원과 감사와 구원의 애원과 토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연환경과 보이지 않는 악마와 악령과의 대결에서 인간 자신의 힘으로만은 항상 패배자란 경험을 하기에 그들은 이 잔혹한 자연의 힘과 그 신비한 악령과 마력을 이길 수 있는 다른 힘을 원했다. 그 힘이 예배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의 도움과 은총을 받는 행위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 예배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예배를 중단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도움과 그 능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배의 포기는 바로 생의 포기와 삶의 중단이라 생각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예배라면, 예배가 어떻게 무너지며, 왜 무너지며, 어떻게 바른 예배(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 이 예배를 통하여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첫사랑이 회복되며, 순수한 믿음이 회복되며, 공동체가 회복되었다. 이것이 나이스크 회복 신학의 주제라 할 수 있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암 9:11)에서 잘못된 예배, 실패한 예배, 죄악, 불순종, 바벨론 포로, 우상숭배를 포함하고 있다. 창세기 3장의 에덴동산 범죄의 결과

(1) 땅/기업 상실 - 동산에서 추방 (창 3:23), 바벨론 포로(렘 29) = 땅 회복 절기(칠칠절, 오순절)

(2) 생명상실 - 정녕 죽으리라 (창 2:17),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 = 생명회복 절기(유월절)

(3) 교제상실 - 네가 어디 있느냐 ? (창 3:9) , 관계성 파괴, 하나님 형상 파괴 = 교제회복 절기 (장막절, 수장절)


이런 상실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셨다. 상실로부터 회복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벨, 에녹, 노아와 같은 인물을 당대에 선택하시고, 바벨탑 이후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선민의 조상을 삼으셨다. 의인의 특

징은 믿음으로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를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바른 예배 그릇된 예배

(1) 아벨: 믿음, 순종, 의의 예배 가인: 선함이 없음, 죄를 다스리지 못한

삶, 불순종(창 4:7)

(2) 에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라멕: 77배의 보복, 용서가 없음

(창 4:23)

(3) 노아: 의인, 완전한 자, 순종 노아당시 사람들: 죄악이 관영함

(창 6:11-13)

(4) 아브라함: 제단, 이삭 번제 롯: 소돔 여인과 결혼, 믿음 전수 실패,

불행한 최후

(5) 모세: 율법, 안식일 준수 백성: 불평, 원망, 불신, 교만, 우상숭배

(6) 사사: 하나님 경외 백성: 가나안 문화 받아들임, 자의대로 살다

(7) 예언자: 회개운동, 지도자, 백성: 경고 무시, 계속 죄를 지음,

회개하지 않음, 우상숭배

(8) 다윗: 찬양, 성전건축준비 사울: 불순종, 미움/시기, 살인 시도,

욕심

(9) 묵시운동: 신정론, 의인 지도자, 백성: 교만, 불신, 인본주의 사상

침투

(10) 동방박사: 예수님께 예배 헤롯: 속임, 예수님 피신 후 보복으로

아이들 살해함.

(11) 예수님: 신령과 진정의 예배 서기관,바리새인,사두개인: 형식적임

의, 인, 신 사단: 자기에게 절하라고 요청

(12) 초대교회: 성령충만한 예배 영지주의: 광명의 천사로 가장, 거짓 예

배주도,

영적인 예배 할례당: 유대 할례를 우상시 함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바른 예배를 찾아 그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신약적인 바른 예배는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삼위일체적인 예배(성부=아버지, 성자=진정, 성령=신령)를 말한다. 이것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이다. (요 4:23-24) <Trinitarian = Theo-Christo-Pneumato Worship>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사건(Kerygma)과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어 매 예배시간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 변화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있으며, 전혀 기도에 힘쓰며, 주의 세례와 만찬이 실시되며, 성령 안에서 교제가 이뤄지는 예배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거짓 예배의 실체를 파악하여 우리도 이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것이다. 성경시대로부터 현대까지 기독교 안팎에 있는 거짓예배의 뿌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 오늘날 사이비 이단의 뿌리를 찾아 볼 수 있고 교회 내에도 이런 요소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거짓 예배 - 사탄의 영, 적그리스도 (요일 4:3, 예수님께서 육체로 성육신하심을 믿지 않음), 형식위주

바벨종교: 바벨탑, 니므롯, 점성술, 천주교로 침투하여

마돈나(음녀)와 아기

이집트종교: 태양신, 영지주의

바알종교: 가나안, 니골라당, 통일교(혼음, 피로 통일함)

페르샤종교: 배화교, 이원론, 마니교,

헬라종교: 인본주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를 차지하는 신화,

로마종교: 황제숭배, 음녀사상, 종교통합사상

유대종교: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고 구약만 지킴.

밀의종교: 시온수도회, 성전기사단, Freemason, Illuminati,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그들의 그릇된 형식적인 예배, 습관적인 예배, 겉모양만의 예배에 대하여 “나는 너희 절기를 미워하며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한다” (암 5:21, 7:12-13)이 말은 이스라엘 사

람들이 드리는 예배는 마음과 정신을 딴 곳에 팔아먹은 속이는 예배이기에 이런 예배를 하나님은 미워하고 싫어하고 기뻐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우리 예배가 우리 인간의 드리는 종교적인 행사에 그치고 하나님 아

버지의 미워하는 일, 싫어하는 일, 기뻐하지 않은 일이라면 이처럼 종교적인 불행은 없다. 아모스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가 드리는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않겠다. 너희가 살진 짐승을 잡아 번제를 드릴지라도 나는 돌보지 아니하겠다. 너희 찬송소리를 내 앞에서 그치게 하라. 너희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겠다.” (암 5:22-23)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 (암 5:24)은 예배의 생활화를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아모스뿐만 아니라 이사야 (사 1:10-17), 호세아 (2:11, 3:4, 4:8, 17-18, 6:6-7), 미가 (6:7-8) 등 8세기 예언자들은 대체로 반제의적 예언자(Anti-cultic prophets)였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예배를 없애자는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른 예배 회복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잘못된 예배를 더 이상 형식적으로 반복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회복운동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하에 완성된다고 예고했다. 암 9:11에서 회복의 주체자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일으켜서 옛적과 세우고” (암 9:11)


바른 예배를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갱신하고 기억하였다. 회복의 하나님께서 예배 속에서 죄를 사하심으로 교제를 회복하시며 (사 1:18, 6:7, 고후 5:19, 요일 1:7),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님(골 1:15)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며(요 3:16),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 (마 5:3-10)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정기적인 예배와 절기를 통해 신앙을 자자손손 대대로 전승할 수 있었다. 가정에서는 쉐마

교육을 전수하였다. (창 18:18-19, 신 6:4-9) 예배가 이스라엘 공동체를 만들고(formed), 유지시키고(maintained), 강화시켰던 것이다.(consolidated) 계약갱신을 통해 상징적 우주(symbolic universe, Peter Berger)이 유지되고, 예배를 통하여 공동체가 강화되어 나가 예배공동체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배가 죽으면 교회가 죽고 가정과 나라가 죽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예배와 삶은 항상 병행되었다. 예배와 생활이 따로 떨어진 것으로 생각지 않았다. 예배가 곧 생활이요, 생활 그것이 예배였다. 예배의 생활화가 이루어졌다.


이를 정리하면

(1) 땅/기업 회복 - 하나님 나라 유업 - 칠칠절/오순절/율법을 받은 날/성령강림절

(2) 생명 회복 -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 주심 - 유월절및 초실절/성금요일과 부활절

(3) 교제 회복 - 죄를 용서해 주시고 화목케 하심으로 하나님과 사귐 - 대속죄일/장막절/재림


3. 성서신학적 견해


예배에 대한 연구에 기여한 학자는 거의 구약 성서학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1960년대에 예배의 성서적 분석이 나오기 시작한 이전에도 구약 학계에서는 예배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었다.


종교사학파의 벨하우젠(J. Wellhausen, 1844-1918)은 문화사적으로 이스라엘 예배를 3단계로 분석했다.

(1) 출애굽기 34:18이하(출 24:14-17) 나타난 대로 농경문화적인 배경에서 시작한 맥추절 수장절과 같은 예배로, 예배의 목적이 땅의 축복을 목적한 것으로, 그들의 1년 농사의 결과인 추수가 풍작되기를 기원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가나안 원주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2) 신명기 16장에 나와 있는 대로 이스라엘의 삶이 땅과 자연에만 의지하지 않고 역사적 사건과 관련됨을 의식한 정치사적인 사건을 중심한 예배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출애굽 사건이 일어난 때에 시작된 유월절 예배에서 그들의 하나님과 자기들과의 관계성의 뜻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다. (3) 제사 문서(P)에 나타난 예배개념과 의의로서(민 28-29장, 레 23장) 농사와 관련된 맥추절이나 정치사와 관련된 유월절 예배와는 달리 속죄의 의식, 번제, 화제 등 의식과 규약이 제도화되어진 예배를 보게 되는 단계이다. 그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예배 역사는 유치한 자연종교적인 형태에서, 윤리적 의미를 강조하는 단계로, 그 다음은 의식적인 면을 더 강조하는 제도화된 예배로 발달 된 것으로 보고 있다. (the evolutionistic rationalism of the Wellhausen School)


이런 종교사학파적 입장과는 달리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은 이스라엘 예배의 역사보다는 그 생성과정과 발전 경로를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삶의 정황’ (Sitz im Leben = setting in life)에서 보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게 되었다. 양식사 연구의 초석을 놓게 된 궁켈은 시편의 문학적 양식을 찾아 분석하면서 시편의 배경은 예배였다고 강조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체적인 삶의 환경에서 예배가 시작되어 적절한 기도와 찬송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시편에 수록된 시들은 단순한 서사시가 아니라 지어진 동기는 항상 예배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가령 시편 45편은 왕의 혼인예식을 성전에서 드리게 될 때 부른 찬송이며, 20편은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적과 더불어 싸우려 전쟁터에 나갈 때 먼저 하나님의 성소에 모여 제사장의 사회 아래, 승리를 가져오며 그들의 무운이 장구하기를 기도하는 예배의식에서 나온 시이며, 21편은 전쟁에 나간 왕과 군사들이 승리를 얻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의 성소에 모여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릴 때 부르기 위해 지어진 것이었다. 예배는 예배 그것을 위하여 드린 것이 아니라 그러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생의 사건이 있었다. 즉 삶의 자리 또는 구체적인 삶의 환경에 때라 예배가 드려졌

다는 것이다. 칠칠절, 수장절, 유월절 예배, 속죄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그들의 삶에서 얻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구원이 감사해서 드린 것이다.


구약성서 자료의 전승된 역사를 다룬 알트(Albrecht Alt, 1883-1956)는 구약의 율법의 기원을 연구하면서 그 율법들이 단순한 사회의 윤리적 법질서를 규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맺은 계약을 갱신하는 예배의식을 집행하는 가운데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존재 의의와 그 사명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율법도 예배의 선물로 여겼다. 알트의 제자인 마틴 노트(Martin Noth, 1902-68)는 이스라엘 역사 형성이 전승의 기원과 보존 및 육성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 경우에도 그는 이러한 전승의 과정이 이스라엘의 예배 사정과 긴밀한 관계에서 되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승의 과정에서 예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스칸디나비아 학파(혹은 Uppsala-School, 소위 예배역사학파 Kultgeschichtliche Schule=Cult-history School, Wilhelm Gronbeck, S. Mowinckel, Johannes Pedersen, Aage Bentzen, Geo Widengren, Ivan

Engnell, Alfred Haldar, A.S. Kapelrud 등)에서 시편의 제의적 연구를 많이 하여 예배연구에 공헌을 많이 하였다. 제사문서(P)의 체계적인 연구도 예배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구약에

서는 화해를 위한 희생 제사가,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화해를 기념하는 성찬 예식이 예배의 근원적 의미를 보여 주고 있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예배는 모두 화해(reconciliation)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짐승의 희생을 통해 죄사함을 받거나 (레1:5, 삼하24:24)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고후5:17-19) 예배는 화해를 이루시는 분에 최상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였던 모빙켈(Sigmund Mowinckel, 1884-1965)은 궁켈의 영향을 받아 시편의 문학적인 유형을 발전시키면서 고대 이스라엘의 예배의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였다, 고대인의 생활

그것이 종교요, 그 종교는 교리와 윤리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전하기 위한 예배의식이 중요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들의 날마다의 생활이 자기 자신들의 지혜와 힘으로 되어진다고 생각지 아니하고 그들이 믿

는 하나님에 의해서 되는 것으로 믿기에 그들은 하루의 생활을 예배로 시작하고 또 예배로 끝맺는 것으로 생각했다.


궁켈의 제자인 폰 라트(G. von Rad, 1901-1971)는 이스라엘 신앙 형성이 그들의 예배의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또 이 신앙은 어느 개인 신앙 지도자에 의하여 다음 세대로 전승되어간 것이 아니고, 그들이

각종 절기와 예배를 지키는 일로 전승되어 간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공적인 예배 환경과 계기를 가짐으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갱신하며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은 여

호와의 백성이란 의식을 굳히고 또 새롭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구약성서 신학의 기초를 이스라엘에 전승되어진 신앙고백(Historical Credo, 신 26:5-10)에 두고 있으면서 이를 예배의 주제로 여겼다. 이스라엘은

그 예배를 초기에 초라한 초막에서 가졌든지, 또는 가나안에 정착한 초기에 열두지파 동맹의 중심에서 가졌든지, 단일화된 중앙성소에서 가졌든지, 장소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예배의식의 차이가 없이 예배시간

마다 이 신앙고백을 한다. 그 예배는 과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선조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를 분명히 기억시키며, 동시에 과거에 도와주신 그 구원이 오늘 현재도 꼭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예배이라는 것이다. 구약 신명기서는 이러한 예배의 의미를 강조하는 증거로써 ‘오늘’(this day)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예배의식을 통하여 오늘 나의 사건으로 현재화 시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신 5:3) 이런 현재화 예배의식은

신앙의 유산을 자여손에게 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구약에서 ‘신앙의 전승’ (transmission of faith)의 문제는 예배와 직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예배가 결코 성전 안에서 어떤

의식을 집행하고 거기 참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성전 밖에서도 가정에서도 삶의 현장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 예배가 곧 삶, 삶이 곧 예배인 것이다.


이외에 W. 해릴슨(Walter Harrelson)을 비롯하여 로우리(H. H. Rowley), 한스 크라우스 (Hans-Joachim Kraus), 드보(Roland de Vaux), 쿨만(Oscar Cullman), 폰 알멘(J. J. von Allmen)등을 열거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예배공동체(worshipping community)였다. 구약성서에서는 우상숭배의 근절과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예배를 강조하고 있다. 고대근동 고고학의 발달로 팔레스타인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제의 장소가 발견되고 있다. 그 대부분이 우상 숭배의 제단이다. 어느 촌락이나 도시(state-city)이건 한가운데 신전(shrine)이 있었다. 구약에서 성소(聖所)의 개념은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 즉 예배 장소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기 위해 택한 곳이라고 나타내고 있다 (출 2:24, 신12:5, 12:21, 14:23-24, 왕상8:15,30). 고대근동지방의 종교(바알 종교, 가나안 토속종교, 바벨종교, 이집트종교 등)에서는 의식만 잘 갖추면 신들이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준다고 믿었다. 예배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에 더 신경을 썼다. 이에 비해 구약성서의 예배자는 하나님과 체결한 계약의 약속들을 잘 지키며,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진정의 예배를 드리기를 힘썼다.


4. 끝맺는 말


삶이 곧 예배인 계약공동체를 오늘날 교회는 다시 회복해야 한다. 회복이라는 의미는 치유와 구원이란 말과도 연관이 되어 있다. 독일어 Heil 이란 말은 치유하다. 구원받다는 뜻이다. 구원사는 회복의 역사였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이 된 것처럼 기독교의 예배는 온전한 예배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1) 신령(성령)과 진정(성자)의 삼위일체적 예배회복 (요 4:23-24)

(2)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지는 영적인 예배회복 (롬 12:1-2)

(3)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이 중심이 된 예배회복 (계 4-5장)


예수 안에서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팔복 가르침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을 모두 붙이면 예수 안에서 회복되는 자가 복된 자이다.

(1) 예수님안에서 심령이 가난하게 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2) 예수님안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게 됨

(3) 예수님안에서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땅의 기업을 받게 됨

(4) 예수님안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배부를 것임

(5) 예수님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

(6) 예수님안에서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

(7) 예수님안에서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 됨

(8) 예수님을 위해 핍박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기업을 받음


예수님은 궁극적 회복자이십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 21:5)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


이것이 기본이 되어 우리는 개혁자의 정신대로 오직 성경, 믿음, 은혜, 하나님께 영광(Sola Scripture, Sola Fidei, Sola Gratia, Sola Gloria Deo)의 예배를 세워나가자. 이렇게 하기 위해 오직 기도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전도로, 오직 성수주일로 오직 일조전납의 정신으로 infra base를 구축하여 자녀들에게 신령과 진정의 예배자로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을 다하자. 하나님 경외, 하나님 사랑, 하나님께 순종,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저변확대하는 일에 적극 동참하자.


예수님 안에서 바른예배회복운동의 성서적, 신학적, 역사적, 실천적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져야한다. 이 분야에 많은 연구논문, 설교집, 간증집, 자료집들이 출판되기를 기대하면서 발표를 마친다.


예배가 살면 교회가 살고, 가정과 나라가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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