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수는 들꽃 이야기라는 수필 중에서 친구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뜻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찬구를 가지려면 진정으로 친구의 슬픔 무거운 것을 내가 등에 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한다
물론 친구가 꼭 짐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친구라는 것은 어려울 때 슬플 때 힘이 되어주고 그가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있을 때 대신 십자가를 지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친구라고 말한다
그래서 친구를 Friend 라고 영어로 말할 때 어떤 분이 이렇게 변역했다고 한다
·F ree [자유로울 수 있고]
·R emember [언제나 기억에 남으며]
·I dea [항상 생각할 수 있고]
·E njoy [같이 있으면 즐거우며]
·N eed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고]
·D epend [힘들 땐 의지 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
이와 같이 친구라는 것은 어떤 이해관계에 따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친구로 시작할 때는 그 어떤 것이 동기가 되었을 것인데 그것은 생각하는 것이 같거나 사상이 같거나 하는 일이 같거나 혹은 추구하는 것이 같아서 친구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예외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있다
내 경험이지만 서로가 불쾌하게 의견이 대립되고 난 다음 친구로 발전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을 사귀면서 믿어라 하시지 아니하고 일단 믿고 시작해라라고(히11;1-2)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오늘날 우리들의 친구 사귐은 너무나 타산적이다
혹 믿고 사귀었다고 하였을지라도 자기에게 손해를 크게 끼치거나 어렵게 하면 그는 내 친구가 아니다 하며 선언한다
상당한 세월이 지났지만 한국의 남자들은 대부분 의무적으로 군대생활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몇 년을 군대생활을 하였다 그때 훈련소에서 몇 주간 지옥 훈련이라 하여 무서운 훈련을 받을 때 함께 한 동려가 있었는데 줄곧 전역 때까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다가 몇 개월 차이를 두고 내가 먼저 전역하였다
그런데 전역과 동시에 연락이 끊어진 채 몇 년 만에 서울의 한 거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반가웠고 안부를 물으며 함께 식사를 하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으나 그 이후 서로 한 두 번의 전화를 하다가 교제가 끊어지고 말았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서로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고 환경과 조건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역자의 세계에 들어오니 여기서도 형편은 비슷하다
목표와 이상이 조금만 빗나가도 서로가 나눌 수가 없는 사이가 된다
또 서로가 사역에 바쁘다 보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고 대화는 어쩌다가 한 두번 해볼 뿐이다
어느 글에서 보니 조금은 감상적이지만 이런 글이 있어 적어본다
제목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 ..이다
1월에는 가장 깨끗한 마음과 새로운 각오로 서로를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친구이고 싶고..
2월에는 조금씩 성숙해지는 우정을 맛볼 수 있는 친구이고 싶고..
3월에는 평화스런 하늘빛과 같은 거짓 없는 속삭임을 나눌 수 있는 솔직한 친구이고 싶고..
4월에는 흔들림 없이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으로 대할 수 있는 변함없는 친구이고 싶고..
5월에는 싱그러움과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우리 서로에게만 전할 수 있는 욕심 많은 친구이고 싶고..
6월에는 전 보다 부지런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한결 같은 친구이고 싶고..
7월에는 즐거운 바닷가의 추억을 생각하며 마주칠 수 있는 즐거운 친구이고 싶고..
8월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웃는 얼굴로 차가운 물 한 잔 줄 수 있는 여유로운 친구이고 싶고..
9월에는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고독을 함께 나누는 분위기 있는 친구이고 싶고..
10월에는 가을에 풍요로움에 감사할 줄 알고 우리 이외의 사람에게 나누어 줄줄 아는 마음마저 풍요로운 친구이고 싶고..
11월에는 첫눈을 기다리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열중하는 낭만적인 친구이고 싶고..
12월에는 지나온 즐거웠던 나날들을 얼굴 마주보며 되뇔 수 있는 다정한 친구이고 싶다...
얼마나 좋은 글인가
고사 성어를 보면 竹馬故友(죽마고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 함께 죽마(대나무 말)를 타고 놀던 친구. 즉 소꿉친구.를 뜻하는 말인데 기원 4세기, 동진(東晉) 목제(穆帝)때의 일이다. 촉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桓溫)이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고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황제는 그를 견제하기 위해 은호(殷浩)라는 사람을 건무장군(建武將軍)으로 등용했다.
은호는 젊어서부터 <노자>와 <주역>연구에 몰두해 현인으로서 그 평판이 높았다. 조정에서 자주 그를 초빙했으나 그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거절하고 벼슬길에 나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황제의 부름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원래 환온과 은호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는데 은호가 벼슬길에 나가고 부터 두 사람은 정적이 되어 반목했다.
그 무렵 호족(胡族)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나라는 이 기회에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은호를 그곳으로 보냈다. 은호는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대패하여 돌아왔다.
이에 환온은 상소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쫓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릴 때 은호와 함께 죽마를 타고 놀았는데, 내가 타다가 싫증이 나서 버리면 은호가 그것을 주워서 놀았었다. 그러므로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 후 환온이 그를 다시 불러들이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에서 생애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장황스럽게 서론을 말하는 것은 나에게 아주 좋은 친구가 있다
내게 무엇을 잘 해주고 못해주고는 중요하지 않은 친구이다
그 친구를 보면 그냥 좋다 그에 말을 하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물론 내가 그 친구 목사님을 향하여 이토록 좋아진 감정은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내가 아주 어려웠을 때 아무것도 몰랐을 때 목회가 무엇인지 목사가 무엇인지 아직 소명과 사명에 대해서 분명하지 않았을 때 만났다
그때는 목회를 시작하기 전이었고 목회를 하여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기로에 서 있었을 때였다
다짜고짜“목회를 하세요”“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거부하는 것은 불량배나 하는 것입니다” “목회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자격이 있고 없고도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며 능력이 있다 없다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찾아오신 그 친구의 단호한 음성이었고 나는 순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감사가 되었고 기쁨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것이 동기가 되었고 그로 인하여 일 년에 한번 혹은 이년에 한 번 만나는 친구이지만 내 마음 가운데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목사님을 best friend 라고 강단에서 거침없이 소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