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사
Nyskc Leadership Academy’18을 찾아오신 여러분은 성삼위 하나님의 아낌없는 사랑과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찾으신 예배자로 하나님을 향한 산제사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한 거룩하여 구별한 성도들인 줄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Nyskc World Mission 과 동역하는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의 지체들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된 권세를 가진 구원받은 백성들이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입니다. 또한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고 나라와 가정이 산다는 Theme을 가지고 신앙생활의 5대신조 행동강령인 NYSKC로 신앙생활의 방편을 삼아 나가는 NYSKCIAN들입니다. 그리고 NYSKC MOVEMENT의 사명자로 MS, MS2, MAS라고 부르는 Leadership를 가진 Leader들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는 충성스러운 일꾼이며 NWM에서는 사역자입니다.
여러분들은 NYSKC로 예배회복운동에 동참하며 전 세계 모든 민족과 열방을 향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새벽기도와 말씀애독 그리고 개인전도와 성수주일,축복의 도리로 예배를 회복시키려고 하는 Nyskcian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와 말씀 그리고 전도와 주일을 지키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존귀와 영광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성도의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Creed로 무장된 Christian 이자 Nyskcian 들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NYSKC가 왜 예배회복입니까 라고 질문하면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Nyskc Staff로 Core Member 이기 때문에서 이러한 대답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기 섬기고 있는 교회들의 헌신자요,Nyskc Movement에 소명을 받은 자로 부름을 받았으니 답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해 Nyskc Leadership Academy로 모인 것입니다
NYSKC로 훈련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NWM Vision을 나누며,은혜충만 성령충만 믿음충만한 사명자로 예배복운동에 일꾼으로서 맡겨진 역활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찾으시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입니다.참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하나님께서 옳다 인정하시는 성도로 거듭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NYSKC가 예배회복”이라 말하는 첫번째 이유을 알야야 합니다.
NYSKC는 예배가 회복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는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 증거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것을 깨달아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무시기도까지 기도의 삶을 삽니다.
또 하나는 말씀을 사모하며 애독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양식임을 깨달아 말씀이 육신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나 크고, 거져받은 은혜가 너무나 커서 이 복음을 이웃들에 전하려고 힘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요,꿀송이보다 더 달고 맛있는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믿고 전도자로 사는 것이 증거 때문입니다.
전도는 성도의 열매이라는 것을 깨달고 전도중심의 삶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배중심, 교회의 중심의 신앙생활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모이기에 힘쓴다는 것입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건물이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집이라는 믿음으로 주님 보좌 앞에 나온다는 믿음으로 모인다는 증거입니다.모일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는 믿음으로 모인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성령과의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증거를 보여줍니다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보내주신 독생자를 그리스도로 영접하
게 하여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나는 복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의 확신은 예배가 회복된 사람들의 이구동성 간증입니다.
복이 있는 자이기 때문에 악인을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히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은 자의 도리를 다하는 믿음이 물질로 나타나 일조전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NYSKC가 예배회복인 두번째 이유는 신앙생활의 여러 요소들이 모여 예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요4:23절을 보면 ‘신령과 진정 또는 신령과 진리,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신령과 진리’가 예배가 예배되기 위함은 ‘기도와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서 드려지는 것을 예배라 할 수있습니다.
왜 기도와 말씀이 예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을까요 이유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예배자 곧 살아있는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로마서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신 것처럼 살아있는 예배자가 되려면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하지 않은 예배자가 예배를 드린다면 영혼의 호흡이 멈춘 죽은자가 예배한 것과 같으며
말씀은 영혼의 양식 곧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므로 양식을 먹지 못한 제물은 죽은 것이니
죽은 자가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은 예배자에게 있어 생명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되지 못한 예배자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형식적인 예배요 거짓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회복되려면 기도와 말씀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배 속에 기도가 없다거나 말씀이 없다는 것은 예배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찬양의 제사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헛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약 노래만을 예배라고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이 없는 예배는 결코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죽어 있는 제물은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기도와 말씀이 없는 예배자는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흠 없고 병들지 않고 살아 있는 소나 양을 하나님께 드리며 제사 드렸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호흡이 멈춘 죽은 것이요. 설령 호흡을 하고 있다 하여도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지 않고 듣지 않는다면 결국은 굶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영혼의 호흡과 더불어 영혼의 양식인 말씀도 먹어야 합니다
세번째 NYSKC가 예배회복인 이유는 초대교회시대에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의 한 가정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었고 불이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며 성령 강림하여 기도하던 120문도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승천하신 후 몇날이 못되어 보혜사 성령을 보내겠다 하신 약속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없는 제자들은 두려워서 문을 잠그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약속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던 가운데 성령충만을 입게 되자 능력의 사도들로 바뀌었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았고 어디서나 누구에게든지 예수님을 증거하며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며 모든 족속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일에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구하라 두드리라 찾으라 얻을 것이며,열릴 것이며, 찾을것이라 그러나 이 보다 더 좋은 성령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또한 “두 세 사람이 모여 기도하는 자리에는 내가 함께 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배회복을 이루려면 기도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입니다
그런데 이 떡을 예수님이라 말씀합니다. 그분은 만세전에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말씀, 생명의 떡이며 길과 진리 생명이라 합니다.
그분을 믿는다는 하는 것과, 먹는다 하는 것, 그리고 영접했다, 하는 표현들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내 몸과 피를 받아 먹으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과 음료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살아나게 되어 있도록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분을 믿기만 하면 회복됩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꼐 하셨으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곧 말씀입니다 말씀은 곧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먹으면 생명을 얻게 되어있습니다.
네번째 NYSKC 가 왜 예배회복입니까 하고 물으면 여기 다섯가지 N.Y.S.K.C.는 기도와 말씀 전도와 성령의 교통 마지막으로 헌신은 예배자에게 예배회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예배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예배를 열납하시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아벨은 깨달아 하나님이 가르켜 주신대로 양의 새끼를 드렸으로 참된 예배가 되었으나 가인은 자기 생각대로 제사를 드리므로 거짓된 예배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제사의 차이점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렸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아벨의 제사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렸다는 증거는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가를 보고, 듣고, 배운대로 하였습니다.
저들의 부모는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수 있도록 하나님으로부터 가죽 옷을 받아 입고서야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살아있는 짐승을 드리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가인과 아벨을 낳았으며 자라는 동안 부모의 예배하는 것을 보며 듣고 배웠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릴 나이가 되어 제단을 쌓게 되었을 때 아벨은 양의 새끼를 드리며 예배하였으나 가인은 수고하고 땀 흘려 얻은 열매를 드리며 예배하였으나 하나님은 아벨의 것은 받으시고 가인의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가인은 자기의 생각과 수고로 하나님을 예배하였더니 가인의 얼굴 안색이 변했습니다 이유는 억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이 드린 것은 양의 새끼입니다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였던 대로 하였던 이유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부모의 예배드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벨도 양의 새끼지만 믿음으로 예배드렸더니 하나님이 열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믿음으로 드린 아벨” 이라 말씀하셨습니다.(히11:4)
양 새끼와 가인이 수고하여 얻은 농산물을 비교한다면 어떤 것이 인간적으로 더 수고가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습니다.
다섯번째 NYSKC가 예배회복인 이유는 나타나는 현상이 전도와 성수주일과 십일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배가 회복되었다고 말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다든지, 모이기를 힘쓰지 않는다든지, 예물드림의 생활을 안한다면 예배회복이 되었다는 것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은혜가 충만합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감사가 넘치고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완전하게 체험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고 높이고 싶고 더욱 사랑하고 싶어지며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게 되므로 이웃들에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입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에 대한 고백입니다.
전도는 나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나와 이웃들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 나라 천국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살 수 있는 길과 진리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예배가 회복되지 않은 사람은 전도할 수 없어 형식적으로 하는 시늉만 냅니다.
예배가 회복된 예배자들은 전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참된 예배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열매가 됩니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그 다음 예배의 대상은 이웃들입니다. 예배가 회복된 예배자의 열매는 세상을 향하여 담대하게 예수님은 그리스도다 라며 외치는 성도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세상을 향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하고 그의 나라와 의를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이 곧 예배가 회복된 사람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하나님의 명령입니다.주님의 가장 큰 관심입니다
전도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이며 최고의 사역입니다.
예배가 회복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못견딜만한 충만으로 행하는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
전도는 예배가 회복된 성도들의 신앙의 열매입니다.전도하면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합니다. 전도 자체가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전도 자체가 상급입니다. 면류관입니다.
전도는 기쁘고 복된 성도의 열매입니다. 전도하는 삶은 하나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살전2:19~20)
또한 전도는 내 삶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선포하며 증거하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서 주인노릇을 하던 세상 영, 악한 영을 내쫓고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원천적으로 성령 충만하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성령 충만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를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깨달은 성도들은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세전에 복된 자로 지으셨고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된 우리를 새명으로 옮겨 구원얻게 하신 분이시며 성령님은 이와같은 일을 역사하시는 분이시니 이것이 복음이며 복된 소식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당연히 구원의 주시요 자기를 만드신 창조주이며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방황을 끝내고 참 만족의 삶 곧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전도는 하나님께서 은혜 받고 준비된 자에게 택한 영혼을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는 열정을 소유한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또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만들어줍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는 축복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6:7) 또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14:23)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1:38)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5: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126:5)
복음을 전하는 자는 만세전에 택함을 입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 곧 성도이며 소명받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주님을 영육 간에 구체적으로 체험한 복된 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성령이 충만하여 주의 말씀이 입술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해야 복음을 전하게 되며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전도자에게는 하늘에 상급인 넘치는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됩니다.
여섯번째 NYSKC가 예배회복이라는 이유는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아니하고는 예배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성령께서 수면에 운행하셨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회복된 사람들은 성령에 충만함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성령과의 교통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우리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기는 곳에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 하셨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10~22)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주시 장소가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예를 보면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을 보면 단을 쌓을 때 즉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만나주셨으며 단을 쌓은 장소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한 뒤에 성막안 속죄소에서 만나 주셨습니다.
안에 조각목이 없고 온전히 정금으로만 되어 있는 속죄소는 율법을 넣은 증거궤를 닫는 뚜껑입니다. ‘은혜를 베푸는 자리’라고 해서 ‘시은좌(施恩座)’라고도 합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시는 장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에 충만하시지만, 우리가 아무 데에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나를 만나려면 그곳에 와야 한다’ 하고, 당신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속죄소이며 성막 안에 지성소입니다.
그리고 이후 예루살렘 성전, 회당에서 만나주셨습니다
이처럼 장소의 개념은 예수님이 오시면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처럼 고귀하여 목숨처럼 아끼며 사랑했던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을 헐어버리시고 사흘만에 다시 세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장소와 건물이라는 성전의 개념을 완전히 헐어버리시고 자신의 몸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육체로 세우시게 되었습니다.
장소의 개념에서 예수님이 어디를 계시든 예수님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건물의 성전개념에서 예수님의 몸으로 그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면에서는 동일한 개념입니다
예컨데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면 예수님이 성전이라는 것은 같은 의미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예수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니 같은 의미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지 구약에서는 지정된 장소였다면 신약에서는 예수님 중심이라는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는데 구약에서 단이나 성막이나 성전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함께 함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가득찬 하나님의 신”을 목격하였습니다.
또한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듯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서 죽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 하신 뒤로부터는 또 다른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함께 하시므로 그분을 만나 예배하게 되었으니 결국에는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된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요, 말씀을 애독하는 사람들이요,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며, 교회 중심으로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하며, 성령의 교통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요, 하나님 앞에 시간과 정성을 드리며 자신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며,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예배가 회복된 사람들이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은 곧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Tithe 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자신의 신앙고백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영혼의 호흡 곧 N=New life 라고 하는데 새벽기도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말씀, 곧 영혼의 양식, Y=Yielding for Manna라고 하고, 성도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개인 전도를 S=Salvation for One by One이라 하며, 성수주일 곧 성령의 교통을 K=Keeping for Lord’s Day라 하며, 마지막으로 C= Complete Offering 곧 축복의 도리인 십일조라고 합니다.
Nyskc Movment는 1993년 미국 뉴욕에서 최고센목사로부터 처음으로 시작된 예배회복운동 입 니다. 3년을 준비해 1996년 뉴욕의 업스테이트 Suffering, Holyday Hotel Convention Center에서 Nyskc Family Conference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Nyskc Conference를 열어오는 가운데 미국과 동시에 2007년 일본 오사카에서 그리고 같은 해에 카나다 토론토와 2008년에는 카나다 헤밀톤에서 2009년 몬트리올에서 열렸고 또 영국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2010년 한국에서는 Nyskc Forum그리고 2011년에는 영국런던과 한국 서울에서 Nyskc Family Conference가 개최되었습니다
한편 미국 내 대도시를 돌면서 개최하여 왔던 컨퍼런스는2012년부터는 미 중소 도시에서 개최하며 인디애나, 휴스톤, 애리조나, 필라델피아, 센프란시스코, 그리고 2017년 풀로리다에서 갖게 되었습니다.이렇게 지금까지 Nyskc Movement로 함께 한 나라는 일본과 영국과 유럽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독일, 오세아니아 주의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해, 필리핀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시아와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서남아시아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네팔과 스리랑카 등에서 그리고 북미주의 캐나다 토론토와 몬트리올과 우리의 고국인 한국에서 개최해 왔습니다.
2015년에는 대전에서 2016년에는 광주에서 2017년 7월에도 한국 전주에서 Conference를 갖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중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 북미와 남미, 영국과 독일 등 유럽,아프리카와 동구라파의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위성국가들, 그리고 서남아시아 중동 지역,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일본과 한국 등 전 세계를 향한 예배회복운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신령과 진리의 예배요, 예배자를 찾으시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매년 컨퍼런스와 콜로키움 그리고 심포지움과 세미나등에서 Staff 로 일하여 줄 사명자로 세우고 한편으로는 각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헌신자로 교회와 목사님의 목회를 돕는 자로 쓰임받고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사도적 사명자로 세워기 위하여 이와같은 Nyskc Leadership Academy를 열어 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Nyskc Movement가 시작된지 25년이 되었고 돌아보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아니였다 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또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그 은혜를 깊이 깨달 은 헌신자들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결코 쉬운 길이 아니였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진 것은 만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주셨으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었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여 이처럼 거져받은 은혜 거져드린다는 심정으로 주님의 일을 하여야 하겠다는 결단 가운데 여러분들이 훈련받았으면 합니다.
제자에서 사도적 사명으로 봉사자에서 헌신자라는 사명으로 구원받는 것에 감격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의 사명자로 생명보다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MS, MS2, MAS들이 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Para Church Movement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Church Movement 인 NYSKC MOVEMENT에 참여하고 있는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Para Church라는 말은 교회 밖에서 교회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선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출발되었지만 그들로 인하여 교회가 교회답게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헌신자나 봉사자들이 그들 단체로 빠져 나감에 따라 교회는 점점 약화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도록 훈련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교회를 세워주셨는데 그것에 부족함에 돕는 기관으로 세워진 Para Church 가 교회를 약화시킨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Para Church 들을 통해서 은혜가 충만하며 성령충만하여 사명에 불타오르는 형제자매들을 봅니다. 그들을 교회에 더욱 충성하게 하는 방향으로 옮겨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Para Church는 교회 안에 부속된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얼마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할 수 있어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배로 나타납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면 전도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할 수 있는 범위는 인류전체입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보면 교회의 선교부분이나 교육부분 그리고 구제부분에 있어 부족함을 Para Church들이 도우며 도전을 주기도 하며 헌신자를 훈련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Nyskc Movement는 Church Movement로서 교회중심이 그 핵심활동입니다.
교회를 더 강화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예배입니다.기도와 말씀 성도의 열매인 전도와 교육 그리고 교회중심으로 모이기를 힘쓰며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예배가 중요합니다
다시말하지만 교회는 주께서 주신 지상에서의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할 수 있는 가장 형이하학적인 모형입니다. 천국을 가지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천국에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중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천상의 예배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교회와 예배는 서로 밀접한 상호관계성을 유지합니다.따라서 교회는 성도들로 이루어져 성령안에서 서로 섬기며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몸이며 예배는 하나님 중심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 하며 섬기며 모든 영광을 돌리므로 하나님 중심, 교회중심은 예배로서만이 가능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목적이 천국간다 하는데서 머물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입니다 이웃들을 사랑하여 국경을 넘고 모든 열방을 대상으로 선교에 힘을 쏟으며 전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들을 예배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 말은 결국은 신앙생활의 본질은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크게 예배생활과 교회생활로 나눕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 곧 예배생활이며 교회생활은 이웃을 사랑하는 전도생활 선교중심의 생활로 구분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예배가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도 예배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예배라고 하는데”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신 말씀이나 제자중 하나가 어떤 여인이 아주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쏟아 부어 씻기는 것을 보고 흥분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야 한다며 비판할 때 “내게 하는 것을 막지말라”하셨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행하는 신앙생활이므로 예배는 본질입니다.
성경 마태복음에 보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how oft shall my brother sin against me, and I forgive him? 마18:21-35) 일곱번이면 됩니까 하니 예수님은490번이나 이웃을 용서하라는 것은 끝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참된 예배자라면 “너희가 용서받은 것 같이 이웃을 용서하며, 너희를 사랑하신 하나님처럼 너희도 거져받은 은혜 거져주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러시면서 “너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면 먼저 원수된 형제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고 와서 제사하라” 하셨으니 참된 예배에는 용서와 사랑이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을 보면 주님을 몰랐던 베드로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았던 베드로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대한 완전한 무지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의지도 못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산다는 것은 물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모르는데 내 자신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계모든 만물에 으뜸이시자 기준이 되는 분이기에 하나님을 모르니 내 자신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모르고서는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모르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오늘 비로서 주님이 누구시며,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Identity를 발견하고는 진정한 예배자로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러므로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진정한 예배자로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전도하셨던 것입니다
그 내용은 깊은 대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들 어부는 밤이 맞도록 수고 하며 고기를 잡으려 하였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저들 어부의 생각은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을 앞세운 고기잡이였으며 그들은 깊은 곳에서는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완전하였던 것으로 자기들의 판단으로 그물을 내렸고 또 그물을 던쳐서 끌어올렸으나 그물에는 고기가 없어 돌아와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부 베드로의 배에 올라 깊은대로 가자고 하였을 때 그는 마음으로 이미 거절하고 있었습니다.자기의 동생 안드레로부터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찾아가지 않았던 베드로였고 자기 배에 올라 말씀을 전하실 때도 그는 할 수없이 예수님을 용납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깊은대로 가지 할 때 억지로 순종했고, 깊은 물에 가서는 그물을 내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놀랄만큼 고기가 많이 잡히게 되었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 였고 친구의 배를 불러 나누어 실을 만큼의 고기가 잡힌 것을 인하여 사람들이 다 놀라게 되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 무릎 아래 엎드려서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곁을 떠나소서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예배자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참된예배자가 되었을 때 사람을 취하는 리더쉽을 갖게 하십니다
사람을 취할 수 있는 Leadership을 갖게 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Leadership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쫒은 사람들이 Leader’s이었으며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사도로 부름받은 소명자요 사명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은혜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은혜를 끼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서나 세상가운데서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빛과 소금의 역활이요 등대와 같은 삶을 살며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리며 그분의 편지가 되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Leader가 되기 위해서는 제일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애독하고 상고하며 묵상하며 말씀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 어느 곳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파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신 것처럼 성도의 열매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거져받은 구원의 은혜를 가지고 선교와 전도에 힘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성령이 운행하시지 아니하시면 아니됩니다.
성령에 교통 성령의 교제가 너무나 중요한데 특히 참된 예배가운데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모이는 자리에는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으로 모이기를 힘쓰며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는 Leader이 되어야 합니다.
산제물로 산제사로 드려질 수 있는 Leader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향기가 천사들의 향료에 들려 하나님 보좌 앞에 이르고 여러분의 향기가 온 세계에 퍼져나가야 합니다.
베드로와 그와 함께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말씀입니다.
소명을 받았으면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베드로가 버린 것들을 나열하면 우선 자기의 생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고기잡이와 관련된 것들을 버렸습니다 배와 그물과 잡은 고기 그리고 직업까지 버렸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가정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버렸다고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가정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대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친근하던 것 혹은 늘 습관처럼 해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 한분만을 바라보고 버렸으니 이것이 사명자요 다른 의미로는 Leader로서의 자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떠습니까 과연3박 4일간의 훈련일정도 감당할 수 없는 악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소명도 없이 또 사명도 없이 신앙생활에 있어 이웃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자 하는 마음도 없이 나만 은혜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결코 그것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Nyskc Leadership Academy를 열고 모인 것은 참된 예배자로 세워지고 교회의 헌신자로 Nyskc Movement의 일꾼이 되어 전 세계를 향한 예배회복운동을 강력하게 펼쳐나가게 되기를 바라는 소원으로 기도하며 준비한 훈련소입니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받아 주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참된 예배를 회복하는 일에 쓰임받는 것입니다
Conference, Colloquium, Momentum, Forum, Symposium, Leadership Academy에서 어떤 사람은 방송사역과 극단사역에 어떤 이는 Nyskc Univ.에서 그리고 컨퍼런스 강사로 어떤이는 글을 교정하고 책을 만들며 웹사이트 관리로, 또는 해외에 본부사역에 동행하며, 시간 물질 정성을 드리며 헌신하는 Leadership이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Leadership Academy는 사역의 훈련을 위한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와 더불어 사역을 위한 훈련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훈련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협력하고 그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2018 한국 대전 건양대학교에서 7월30일부터 8월 2일까지 3박 4일간 그리고 미국에서는 Washington D.C.에서 6월26일부터 29일까지 3박 4일 열리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여러나라에서도 준비되고 있으며 아프키카와 유럽에서 포럼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Nyskc Movement 는 2018년 현재 제 2라운드가 시작되어 앞으로 12년동안 국제적 컨퍼런스로 International하게 만들기 위하여 다중언어 체제는 물론 다양한 세계 모든 민족과 열방들이 모이는 컨퍼런스로 만들어가려고 합니다.또한 미국내의 National Conference는 2019년 텍사스 달라스에서 그리고 2020년에는 죠지아 아트란타에서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일에 Leadership Academy에 참가한 여러분들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주님 안에 있는 여러분들의 열정이 필요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협력이 요청되며 이를 위해 우리들이 성령충만 은혜충만 말씀충만의 업그레이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May 1 2018
대표회장 최고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