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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th 특별새벽기도회, "Supernaturally"현실을 넘어서라,초월하라"... Nyskc Family Conference Korea'24를 위한...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초월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현실을 초월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막9:22-23)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바탕에는 ‘초월’, ‘초자연적’, ‘수퍼내추럴(Supernatural)’과 같은 믿음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과 정신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우리는 그 정신과 마음과 가치를 갖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을 만나지만 우리는 그 모든 상황들을 초월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1. 현실을 보며 절망하지마라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셨는데 종종 제자들과 함께 산에 가셨었습니다. 이번에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 위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되었는데, 예수님의 옷에서 밝은 광채가 나고, 그 자리에 엘리야 선지자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는 것을 제자들이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곤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에 너무 놀라고 두려워 정신을 잃을 뻔 했습니다. 제자들은 마치 천국 안에 들어가 있는 듯 했던 것입니다.


그 놀랍고도 엄청난 영광스러운 사건을 목격하고 세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다른 제자들이 있는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마을에는 큰 무리가 제자들을 둘러싸고 모여 소란스러웠습니다.

온 무리가 예수님이 오신 것을 발견하고 예수님께로 몰려 왔습니다. 무리 중에 어떤 한 남자가 예수님께 자신의 아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막9:18절 말씀입니다.“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에서는 이 질병을 ‘간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간질 증상은 예고 없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킵니다. 환자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심할 경우에 길을 가다가 갑자기 쓰러지기도 하는데, 사지가 마비되고, 순간 정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이 아들은 매우 심한 케이스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때마침 아들을 예수님 앞에 데려 왔더니 그 때 발작이 와서 쓰러져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신음하면서 엎어져 구르며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습니다.


21절에 의하면 이 아들은 어릴 때부터 간질을 앓아왔던 것입니다.

당시에 별다른 치료법도 없고, 아들은 멀쩡히 성장했는데 순간순간 찾아오는 간질 발작은 아버지의 가슴을 찢어놨습니다.


22절 말씀을 보시면,“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어떤 경우에는 아들이 불과 물 앞에서 발작했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고, 본문을 통해 봤을 때 이 아들에게는 간질이라는 뇌질환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배후에 귀신이 그 질병으로 한 아들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깐 이 아들의 문제는 육체적인 질병과 영적인 귀신들림, 이 두 가지가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런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병든 자를 치료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한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기도도 해 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 보는데도 아들은 전혀 치료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고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는 이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나마 아들을 치료할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의 불꽃이 꺼져가는 거 같았습니다. 그리곤 예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귀신이 아들을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NIV 영어 성경에서는 ‘If you can do anything’이라고 되어 있는데, ‘만약 예수님이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완치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만 있다면 그거라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마을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큰 기대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귀신이 쫓겨나고, 수많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치료 받고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제자들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주었다고 했는데 그 기대가 큰 실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기대했던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거기서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일들이 내 생각과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일이 더디고, 우리가 큰 기대를 갖고 간절히 기도했던 제목이 응답되지 않을 때 절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실망과 낙심과 절망에 빠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눈이 현실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의 실패한 현실, 지금 당장 뭔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지금 당장 어떤 성과가 없는 현실을 바라보니 낙심이 되고 실망스럽고 낙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분명 이런 어려운 환경들이 있을 것입니다.

요즘 같은 때에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현실만 생각하고, 매일 그것만 묵상하고, 그 상황만 바라보며 불평하고 있으면 낙심과 절망만 될 뿐인 것입니다.


이것을 벗어날 첫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초월(超越)’입니다. ‘뛰어 넘을 초(超)’에 ‘넘을 월(越)’자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현실과 그 생각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분명 지금 우리는 암담한 현실의 상황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거기에만 갇혀 있지 말고, 매일 불안한 상황만 묵상하지 말고 그 현실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4절, 15절에서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지금 당장 아브라함에게 좋은 조건은 없었지만, 하나님은 거기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만 바라보고 낙심하고 있지 말고,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보는 것들마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의 현실과 상황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육신의 눈외에도 믿음의 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들마다 진정한 미래의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과 현실들이 있으나 그런 것들로 인해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믿음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시고, 초월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 시작하십시오.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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