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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선교 (Urban Mission)

박웅희 목사(나이스크 카나다 동부 부본부장)


제 1 장 지역 복음화를 위한 지역 분석


1. 캐나다와 주변 도시의 특성

전 세계는 도시화와 세계화(globalization)의 영향으로 지구촌이 변해가고 있다. 특히 모든 민족과 인종에게 이민을 개방하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150 여 인종이 모여 모자이크를 이루는 독특한 혼합 도시이다. 흑백으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의 고유 전통 의상과 언어와 문화, 종교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세계 유일한 혼합형 자유 도시이다. 토론토는 캐나다 경제의 활력소가 되는 중심 도시이다.

정치적인 행정 도시인 오타와(Ottawa)가 있지만 인구는 토론토의 1/5에 불과하다. Montreal은 캐나다 남동부 퀘벡 주에 있는 시로서 캐나다에서 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중요한 항구 중 하나로서 오타와 강과 세인트로렌스 강이 만나는 지점 가까이에 있다.


2. 한국 이민자들의 실태

1960년대 초 소수의 한인과 유학생이 캐나다로 이주한 이후 1968년 캐나다의 이민개방정책이 발표되면서 서독에서 광부로 근무하던 한인들이 캐나다로 대거 이민 온 것을 계기로 브라질과 파라과이 등 남미 이민자의 캐나다 재이주, 월남전 당시 기술자로 근무하던 사람들이 상당 수 이주해왔다. 40년의 짧은 이민역사로 인해서 동포 1세들은 정치, 경제적 기반 취약, 언어, 문화차이, 소수민족으로서의 각종 어려움을 갖고 많은 역경을 겪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동포 2세들의 주류사회의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최근 언론, 문화예술계, 의료계, 법조계 등 전문 직종에 진출 하여 괄목할만한 성장을 가져왔다. 캐나다 내 최대 동포 사회인 토론토 지역은 한인 타운(토론토의 블루어 지역, 웨스턴 지역, 노스욕 밀집 거주 지역 등)을 형성하고 있으며 최근 이민자, 유학생,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역동적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지금은 현재 리치몬드 힐, 쏜 힐, 본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변하였다.

토론토란 이름의 뜻은 ‘만남의 장소’란 의미이다. 많은 나라와 문화와 사람들을 만난다. 복합 문화의 도시에 소수 민족인 한국인으로서 다양한 민족들을 접하면서 세계 선교에 대한 비전을 꿈꾸며 계획하는 도시로서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 이곳의 이민 교회는 다 민족에게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여 세계 복음화를 위한 중추적 도시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3. 캐나다 한인 교회 현황

캐나다 국내 13개 주(3개 준주 포함) 가운데 한인 교회가 있는 곳은 온주(230개, 4.6퍼센트), BC(153개 6.3 퍼센트), 앨버타(18개 2퍼센트), 퀘벡(14개 3퍼센트), 노바스코샤, 매니토바(각 2개) 등 6개 주였다. 온주는 특히 광역토론토(GTA)에 198개의 한인교회가 밀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온타리오 교회협의회에는 108개 교회만이 가입돼 있으나 미 가입 교회를 포함할 경우 온주 한인교회 수는 전국의 47 퍼센트를 차지한다. 해밀턴 7개, 런던 5개, 윈저 3개, 나이아가라, 브랜포드 각 2개 등 GTA 이외 지역의 온주에는 총 32개의 한인교회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BC주는 광역 밴쿠버에 150곳이 몰려 있으며 캠룹스에 2곳, 빅토리아에 1곳이 있다. 이밖에 앨버타에는 에드먼튼 8개와 캘거리 7개 등 총 18개 한인교회가, 퀘벡 주에는 몬트리올에만 14개의 한인교회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 2 장 지역 선교의 어려움과 예배 회복의 중요성

전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다. 전도는 은사와 상관없이 구원받은 모든 신자가 감당하여야 할 사명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대한 바람직한 실천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수 십년간 죽어 가는 교회의 현실을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기독교인의 수가 줄어들 뿐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1. 복음의 능력과 예배의 중요성을 상실한 시대

오늘날 현실 교회는 복음의 의미와 능력을 상실한 시대가 되었다. 복음 전도의 열정을 통하여 신자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가인과 같은 죽은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 졌다. 조지 바나는 “성인 개신교 신자들의 절반은 ‘Sunday Christian'이고 실제적으로 기독교인이라고 분류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비록 10년 이상 교회를 출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격적인 삶을 변화시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나는 이들이 기독교의 기본 교리 조차 이해하지 못한 실제적인 비 기독교인이라고 밝혔다.

조지 헌터는 북미주 교회가 역사적으로 전 세계에 선교사들을 보내던 서양 국가들이 이제는 선교 대상 지역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북미주에대한 지역 선교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인 때를 맞이하고 있다.

또한 한국 교회도 기독교에 대한 호감이 타종교에 비해 대폭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갤럽 조사에서 비종교인들이 가장 호감을 느끼는 종교는 불교가 37.4로 가장 높았고 천주교(17%), 개신교(12.3%)가 뒤를 이었다. 개종 경험이 있는 종교인들을 대상으로 ‘개종 이전의 종교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의 45.5%가 개신교라고 하였다.

이렇게 유럽과 북미와 한국 교회는 복음과 예배에 대한 열정이 식어져가는 위기를 맞고 있다. 예배가 죽어 있으면 전도 운동이 일어날 수 없다.


2.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종교 다원주의의 등장이 전도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종교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 안에 각기 나름대로 진리 체계가 있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각기 나름대로의 구원의 방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함으로서 성경에서 말하는 유일신 사상을 부인하고 있다. 단지 기독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캐나다의 기독교가 급속히 감퇴하는 주된 원인으로 세속화와 종교다원주의를 들 수 있다. 60년대 만해도 신축 교회당이 들어서고 신앙생활에 열심이든 캐나다인들이 70년대의 세속화의 바람을 타고 탈 교회의 현상을 빚으며 이제 서구 기독교는 문화로만 남아있는 현실을 본다. 캐나다의 종교적 성향이 진보적이며 휴머니즘을 존중하는 사회라 개신교회들은 다원주의에 깊이 물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장로교단에 속한 신학교인 Immanuel College와 Knox College는 서구의 다른 신학교와 마찬가지로 다원주의에 입각한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교육을 하고 있다.


3. 이민 목회와 관련해서 이민 교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1세들과 1.5세와 2세들의 문화적 차이와 신앙적 불연속성이 있다는 점이다. 1.5세나 2세대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문화, 경제, 정치, 교육적 배경에 자라났기 때문에 그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많은 1.5세나 2세의 자녀들은 한국 기성 교회의 예배 분위기나 문화적 요소에 적응하지 못해서 교회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2세들은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함으로 인하여 한국어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참된 신앙이 계승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무성에도 한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직원으로 뽑는다고 한다. 자녀들의 언어와 문화적 차이, 신앙적 계승은 3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 회복운동으로 가능하다.


4. 성경적 예배 회복 운동과 전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관심을 가지고 전도를 하지 않고 프로그램 위주로 교세 확장을 위한 방편으로 전도를 한 것이 너무나 많이 있었다. 교회 성장이라는 방법론적 차원이 아니라 성경적 전도를 통한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성취하는 본질에 우선순위를 두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사도들의 성경적 전도 방법을 뿌리내리는가에 있다. 전도에 대한 가장 좋은 모델을 성경 말씀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을 중심한 전도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그와 같은 예배는 헌신과 섬김으로 향하게 한다. “예배는 전도로 표현되고 전도는 예배로 완성된다. 유일한 목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이며 이것이 오늘날 전도의 최고 동기가 되어야 한다. 전도를 이루지 못한 예배는 위선적인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는 우리가 영광 돌리는 그분을 증거 하도록 우리를 내 보내신다.” 예배가 살면 전도 운동은 자연적으로 일어난다.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격적인 예배는 전도로 이어지게 된다.


5. 나이스크 운동은 지역 전도와 선교 열매를 맺는 것이다.

나이스크 운동은 새벽 기도(New Life), 성경 애독(Yielding for Manna), 개인 전도(Salvation for One by One), 성수 주일(Keeping for Lord's Day), 일조 전납(Complete Offering)의 신앙 생활의 5대 Principles for Action을 전 세계에 확산 시키는 운동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여 새 생명을 소유한 참된 신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예배에 생명을 거는 운동이다.. 이는 곧 새벽 기도, 성경 애독, 성수 주일, 일조 전납 등을 기본으로 하여 전도의 열매를 생활 속에서 맺는 것이다. 신자의 삶이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 인 것처럼, 예배를 통해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려진 자들이 삶을 통해 주님의 지상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예배를 체험하고 나면 즉 은혜를 받게 되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게 된다.

전도는 신앙의 핵심이며 최고의 영성이다. 예배를 성공적으로 드린 자가 전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전도는 예배의 연속이며 예배의 완성이다. 전도는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전도는 전인 구원으로서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그가 속해 있는 모든 삶의 영역을 새롭게 한다.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순종하는 신자는 참으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 예배의 성공자이다.


제 3 장 예배 회복을 통한 전도 운동의 실제


1. 현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서부터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라....이르시되 가까운 마을로 가라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으며 새벽 기도하신 후 전도의 사역을 감당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심으로 한 영혼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예수님은 그가 가지고 오신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데 있어서 현장을 중심한 전도를 하셨다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개인 전도를 더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의 전도 명령을 제일 먼저 순종하였다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 개인 전도와 대중 전도에 목숨을 걸고 순종하였다.


2. 전도는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함께 하여야 한다.

우리가 하는 말에 의미와 능력은 성령님이 배후에서 역사하여야 가능하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될 수 없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2장 4절과 5절에 보면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계속 성령 충만 받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인간적인 전략이나 잘 다듬어진 기술, 심지어는 탁월한 논쟁에 달린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의미와 능력을 부여하고 변화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성령님이 숨어서 하는 일이다(엡 6:17). 초대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저들의 전도는 성령이 함께 하는 전도였다. 전도를 자기 힘으로, 인간의 방법으로 전도하면 힘들고 어렵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은총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고 말씀 충만, 성령 충만하여진 다음에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한다.


3. 성령의 인도를 받는 눈높이 전도

바울 사도는 고린도 전서 9장 20절에서부터 보면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같이 되었으며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 같이 하였으며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몇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하였다. 전도 대상자가 어린아이, 청소년, 유학생이라면 저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눈높이에 맞추어 접근하여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대상이 처해 있는 상황을 가능한 한 최대로 이해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4. 정보 산업(인터넷, 방송)과 문화와 스포츠, 예술, 찬양 사역을 통한 전도

인터넷 선교는 청소년들과의 가상공간에서 만나는 주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네트워크란 통신망, 그물망을 의미하는 정보 산업의 용어이다. 네트워크 사역이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은사들이 모두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서 평신도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키게 하는 사역의 대전환이자 가히 21세기 목회 사역을 통째로 짊어지고 나갈 견인차로 여겨진다.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알기 위해서 현대 문화의 사조를 읽을 필요가 있다. 복음을 시대 풍조에 맞게 약화시키려고 문화 사조를 읽자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문화를 읽게 되면 그러면 우리는 전도대상자들에게 줄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이스크 학회와 나이스크 홈 페이지를 통해 계속해서 전 세계에 예배 회복 운동을 전개하여야 한다 (http://www.nyskc.org).


5. 전도를 위한 나이스크 참여 교회 간의 협력

지역 전도를 위한 각 교회가 네트워킹을 해야 한다. 자신의 교회만 전도한다고 해서 안된다. 나이스크에 참여하는 교회와 복음적인 교파의 교회들이 서로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 연합해서 전도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선교를 위하여 연합군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 대한 공동 전략을 세워야 한다. 복음적인 교회들과 연합이 되어 이단과 다른 사이비 종파에 대응하여야 한다. 이단이나 다른 종파에 대응하는 길은 연합으로 가능하다. 연합하여야 만 지역을 살릴 수 있으며 효과적으로 전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결론


전도는 예배의 연속이며 예배의 열매이다. 삶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전도하는 것이다. 예배의 성공자는 전도의 열매를 저절로 맺게 되어 있다. 예배의 영광을 회복한 자는 나가서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순종하게 된다. 예배가 회복되면 전도가 되어 진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주소서”(마 9:37,38)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 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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