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마26:31-35
들어가는 말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이 끝난 후 찬미하고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으로 오르셨습니다. 이때에 주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몇 시간 전에 만찬석에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심히 근심하면서 제각기 “내니이까”하며 물었습니다.
이제 가룟 유다는 그들 가운데서 물러갔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범위를 훨씬 넓혀서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본심에도 없는 이 말씀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먼저 베드로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맹세하고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같이 주님과 함께 죽을 것을 맹세했습니다.
1.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그 모든 말씀이 다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말씀은 창조주의 말씀이요 인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주인공의 예언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신 주님의 예언은 제자들의 안타까운 맹세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셨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도 예수님은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틀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일이 이미 예언된 사실임을 밝히셨습니다(요13:18. 시41:9). 그리고 모든 제자들이 주님을 버릴 것이라고 하신 말씀도 바로 스가랴서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근거로 하신 것입니다(슥13:7). 예언의 말씀은 진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으셨기 때문에 그 말씀에 의지하여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실 일에 대하여 알고 계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자신이 당하실 모든 일에 대하여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구약의 선지자 속에 예언의 영으로 역사하신 분이십니다(벧전1:11). 그러므로 주님은 모든 일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스가랴가 예언한 말씀에 따라 제자들에게 이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3) 예수님은 바로 우리 인생의 걸음을 정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다면 베드로의 인생은 그대로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주장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의 입에서 나오시는 말씀이 헛된 곳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히1:3. 사57:19).
(4)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처럼 작정하신 것인가? 첫째로 예수님에게는 매우 괴로우신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심에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져야 그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이 증거 되기 때문에 주님은 그에게 예언된 모든 쓴 잔을 다 마셨던 것입니다. 이 같은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마26: 53,54).
둘째로 주님은 그들을 데려가시는 데 목적이 있지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중에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요21:18. 요17:15). 세 번째의 이유는 그들로 세상에 남아 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요17:18. 행1:8).
2. 베드로의 호언장담
(1) 베드로는 자신의 마음의 부패성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탄식을 듣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약하고 내가 원하는 일을 못하고 육신의 일에 사로잡혀 범죄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던 것입니다(롬7:21-24). 예레미야 선지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렘17:9). 베드로는 이 같은 자기 마음의 더러움을 모르고 자기를 너무 과신한 나머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2) 베드로는 영적인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말은 이러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을 자기 바로 옆에 두고 “다 버릴지라도”라고 하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하신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교만한 말인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자신의 신앙의 우월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교만한자를 낮추신다고 하신 말씀대로 그의 그 방자한 교만이 꺾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3) 베드로는 독단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의 결론적인 대답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몰랐습니다. 감정적인 기분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4) 베드로의 더 큰 잘못은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신을 더 믿었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오늘 밤 닮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 앞에 그는 마땅히 엎드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하는 지난날의 자신의 겸손과 무력함을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눅5:8).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 주님의 말씀에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주장을 그 말씀보다 앞세우고 권위를 두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우리의 실수와 잘못은 늘 이 베드로와 같은 마음가짐에서 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야 하며 말씀 앞에 녹아나야 하며 말씀 안에 자신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5) 다른 모든 제자들도 베드로처럼 맹세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이와 같이 말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무시하고 자신만을 내 세우는 베드로가 마땅치 아니했습니다. 아마 속으로 분히 여겼을 것입니다. 그들은 제각기 나서며 “나도 베드로처럼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결 론 : 이들은 주님의 하신 말씀대로 주님이 붙잡히는 현장에서 다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날 밤 닭 울기 전에 주님의 이름을 세 번이나 부인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버림받지는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고 하신 말씀대로 이루신 것입니다(요 17:12).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아시고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마 26:29). 베드로에게는 이 실패가 그의 성공의 관건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졌으며 그의 평생을 통하여 다시는 주님을 부인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도 한 번 실패했다고 낙심하여 좌절하면 안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잠24:16).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