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와 영성형성 개인예배와 가정 예배를 교회에서 드리는 공동예배와 통합하는 한 유익한 길은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를 공동예배의 구조를 따라 조직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위해 특히 중요하다. 본 장은 독자들에게 가정예배의 면모를 소개하고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모범적인 예전을 제공한다. 1. 가정예배개론 가정예배는 기독교인으로 성숙하는데 있어서 자녀들과 어른들 모두를 위해 중대한 역할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가정은 삶을 체계화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의해 가족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이런 말은 기독교는 가르침(taught)이라기 보다는 더더욱 포획(caught)이라는 격언을 반향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배척하도록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회상시켜준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계명)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6:8-9) 베리 리쉬(Barry Liesch)는 가정예배는 상황적이며, 감동적이며, 부모들의 모범에 기초함을 주지시킨다(Barry Liesch, People in the Presence of God [Grand Rapids: Zondervan, 1988], 54-56). 초기 유대 가정들처럼 청교도들(The Puritans)은 가정이 미치는 엄청난 영향의 중대성을 인식하였다. 그들은 가정을 기도 드리고 예배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두는 작은 소교회로 인식했다. 가정예배에 대한 이런 접근은 우선적으로 가족 구성원 중에서 어른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어른들은 그들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효과적인 모델이 될 목적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이 급변하는 시대에 가정의 구조는 소중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보통 가정은 더 이상 남편과 아내와 몇 몇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단출한 부모만이 있는 가정들, 혼합된 가정들, 또는 조부모가 다스리는 가정들만이 자신들의 영적 성숙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때 성서적이고 건강하고 적극적인 예배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이 할 수 있는 중심적인 영적 사역 가운데 하나는 영적 각성과 축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사라 쉔크(Sara Shenk)는 이런 방식으로 정의한다: "축제는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경축하는 것이다. 축제는 서로가 간직할 시간을 갖는 것이다. 축제는 벌린 팔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조물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Sara Shenk, Why not Celebrate![Intercourse, Pa.: Good Books, 1987], 3). 축제는 의례(儀禮)와 놀이, 연회, 금식 그리고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반복행위를 바탕으로 한다. 자녀들에게는 축제가 쉬운 반면, 어른들에게는 항상 그렇지 않다. 합리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문화적 장벽은 축하하는 능력을 무한히 감소시켜왔다. 합리주의는 삶에서 나타나는 놀라움과 신비, 그리고 상상력의 옷을 벗기는 경향을 초래했다. 합리주의는 그 근본적 핵심에 있어서 만상(萬象)을 분석되고 지배되고 비극적으로 이용당하는 목적물로 대상화(對象化)한다. 물질주의의 비극적인 파생물은 우리들 인간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축적한 결과 엄청난 양적 시간을 우리가 지닌 소유물을 돌보고 관리하고 즐기는데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탐식적인 경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축제(celebration)와 감사(gratitude)를 위한 잠재력을 감소시킨다. 위대한 축제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문화적 장애물들로부터 우리들을 구출하시고 또한 의미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다. 성경은 여러 다양한 배경 속의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각각의 장면들은 삶에 대한 예수님의 감사를 드러낸다. 예수님은 이제 막 결혼한 부부들과 가쁨을 나누셨고, 포도주가 모자랐을 때 포도주를 제공하셨다(요2:1-11). 예수님은 바리새인들, 세리들, 친구들과 앞으로 제자될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셨다(눅7:36, 10:38, 19:7, 마9:10).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환대하셔서 그들을 팔에 안으시고 사랑으로 축복하셨다(막10:16).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죽자 슬픔에 잠긴 마르다와 마리아를 찾아가 위로하셨다(요11:17-37). 한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절기에 줄곧 참여하셔서 제자들이 함께 유월절을 축하하도록 특별한 지도를 해주셨다(마26:18). 함께 모인 다락방은 후에 있었던 성만찬 축제의 기초가 되었다(눅22:19, 고전11:24-25).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범은 우리가 삶의 현실을 신중히 수용하도록 격려해 준다. 다시 말해 축제는 삶의 곤경에서 도피하거나 일시적으로 그 곤경을 경감시키려는 행위가 아니다. 그와 반대로, 축제는 실제를 강화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초월하여 극적으로 하나님과 연결시켜준다. 넬슨(Gertrude Nelson)은, "모든 훌륭한 예식(Ceremony)은 우리로 하여금 바로 당면한 문제를 현실적으로 직면하여 느끼게 해주고, 삶의 실제가 지닌 어둡고 밝은 양면, 기쁨과 공포 또는 고통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해준다"라고 말함으로써 이 개념을 재강조한다(Gertrude Nelson, To Dance with God [Mahwah, N.J.:Paulist, 1986], 41.). 기독교 가정은 진공상태 안에서 축제를 맞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함께 동참하심을 회상한다. 자녀들과 부모들은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강조하고 회상하는데 도움이 되는 상징을 종종 발견한다. 우리들이 편승한 정보시대에서 우리는 오늘 이 시대의 이미지(images)가 내일의 기억이 됨을 인식한다.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모범(examples)을 제시하도록 격려해주는 그림과 상징적인 물상(物象)을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는 그들을 그리스도와 연결시켜주고 그들이 갖는 예배 경험을 확고하게 해주는 한 가치 있는 수단이다. 우리가 가정축제(family celebrations)를 한낱 한가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가정축제가 우리들에게 "전망을 주며" "우리 자신을 지나치리만큼 심각히 받아들이는 오류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기 때문이다"(Richard Foster, Celebration of Displine [San Francisco: Harper & Row, 1978], 168). 비단 삶의 어두운 시절 가운데서도 예배와 기도는 우리들의 초점을 하나님께로 되돌릴 수 있다. 가정예배는 가정의 정체성과 가정에 대한 소속감을 창조하고 강화시켜주므로 또 다른 보강(補强)결과를 가져다준다(Arlen Roy가 쓴 "Use Family Rituals to Strengthen Church Families and Congregations," Action Information [Alban Institute] 17:6 [Nov./Dec. 1991] : 6-9를 참조하라). 세상은 간혹 잔인하고 정당하지 못할 수도 있어서 우리를 찢어발기려 한다. 그러나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에 의해 감동 받는 가정은 수용과 긍정의 필요한 메시지를 서로 나눌 수 있다. 생일축하, 결혼기념일, 장례, 특별한 사건들과 업적치하, 크리스마스, 부활절 그리고 여타의 기독교 절기일들과 같은 가정의례(Family Rituals)는 하나님과 우리가 맺는 관계와 또한 인간 서로간의 관계를 강화시켜준다. 실제적 표현과 예배행위는 가정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별 문제되지는 않는다. 주요 원리는 가족 구성원들 개개인이 자기들은 세상에서 결코 외로운 존재가 아니며, 필요할 때 도움을 받고, 감사할 때 기쁨을 발견하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가정예배를 위해 다음의 예전을 사용하기 전에 한 가지 언급을 더 추가하고자 한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예배에 참여할 때, 마치 예배를 자녀들이나 가족"에게"(to) 혹은 자녀와 가족을 "위해"(for) 행하는 그 무엇처럼 간주하게 하는 오류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고상하고 좀 더 균형 잡힌 접근방식은 우리 자녀들과 우리 가정을 방문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with)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예배를 위해 예배에서 사용되는 어떤 말이나 형식을 변경시킬 필요성이 있고, 그런 기회를 통해 제공받는 감수성은 예배의 참여도를 높일 것이다. 모든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예배는 풍부한 기억을 간직하게 하고 가족 개개인의 삶속에 그리스도의 형상(Christ's formation)이 이루어지는 역동적 과정을 도울 것이다. 로버트 웨버(Robert Web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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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제리 D. 트웬티어 - 저자는 사립, 공립하교 일반 직장 등에서 환경 훈련 경험을 20년이나 하였다. 또한 작가, 상담원,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텍사스 공과대학에서 교육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40권 이상의 저 있으며 현재 주요...
“가정예배는 복의 근원입니다” ? 제임스 W. 알렉산더(1804-1859) 청교도들은 가정을 작은 교회로, 아버지를 그 교회의 목사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기 가족을 감독하며 목양하는 것은 아버지의 의무였다. 사실 오늘날처럼 그리스도인 가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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